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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아데스 Jul 13. 2023

주머니 속의 눈물

그녀의 반려견 똘이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오랫동안 함께할 것 같았던 관계가 불가항력의 이별로 변했다. 전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가 떠받치고 있던 하늘이 무너지는 중이다. 똘이와 같이한 그녀의 세상이 사라졌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누워 있다. 존재의 상실로 남겨진 이의 외로운 고통을 본다. 깊은 슬픔은 얼굴을 지나 머리카락으로, 베고 있는 똘이의 이불로, 또다시 눈물로 끝없이 이어진다.

 

똘이는 그녀의 삶이 버거울 때 곁으로 왔다. 그저 갓난아기 같았던 똘이를 챙기느라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끌어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들었다. 자신의 존재도 무거운데 어린 동물을 보살피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함께한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길들며 교감의 깊이는 깊어져 갔으리라. 온 정성을 쏟아 똘이를 보살폈고 똘이 역시 수호천사처럼 그녀의 삶을 보듬었다. 어느덧 그녀는 복을 듬뿍 받은 것처럼 행복하기만 했다.

집 안 전체가 그를 위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미끄러지지 않게 깔린 카펫 위에 장난감 공과 놀이 물건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개구쟁이였지만 예쁘고 순해서 동네의 유명 인사였다. 산책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그 아이에게 인사하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떤 때는 간식과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

비 오는 날, 가족이 딱 한 번 똘이를 놔두고 외출했다. 똘이는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울었고 그 소리는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급기야 주민이 경비실에 연락하고 경비실에서 그녀에게 연락해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와야 했다. 그 일 빼고는 사고 한 번 친 적 없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똘이를 좋아했다.

어느 날, 똘이와 산책 중인 그녀와 마주친 적이 있다. 바지에 커다란 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기에도 손으로 직접 바느질한 흔적이 역력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속에는 똘이의 간식이 들어있었다. 산책하기 편한 바지인데 주머니가 없어 자신이 만들었다고 뿌듯해했다.

 

“똘이야, 너 어딨니?”

그녀가 일어선다. 커피라도 대접해야 한다며 만류하는 내 팔을 잡고 비틀거린다. 주방에서 털썩 주저앉는다. “빵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달려오지 않네?”라며 또 한 번 통곡한다. 지금 그녀에게 크로노스의 시간은 없다. 끝도 모르게 빠져드는 카이로스의 시간만 존재할 뿐이다.

 

롤랑 바르트는 ‘애도 일기’에서 말한다. 그 어떤 ‘살아가는 의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그녀에게 그 의미가 다가올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모습일지 언제일지는 나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동안 캄캄한 터널 속에 주저앉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리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녀가 키워야 할 슬픔의 크기에 마음이 아플 뿐이다.

 

사진 속 똘이는 생일 고깔모자를 쓰고 리본을 매고 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반갑게 웃으며 나를 맞이한다. 선한 눈망울이 가슴에 파고들어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똘이야. 정말 고마워. 사랑해.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똘이와 함께 빛났던 그녀의 삶이 바래지지 않길, 상실의 슬픔과 상처의 터널을 잘 통과하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무심한 시간은 느리게 스쳐 지나가고 그녀의 주머니 속에는 슬픔만 가득하다.

 

길가 능소화의 붉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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