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레이아데스 Jul 21. 2023

사람의 거리 지수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은 제각기 겉보기 밝기를 가진다. 진짜 밝기는 아니다. 별까지의 거리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으면 밝게 보이고 멀리 있으면 어둡게 보인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대로 측정한 겉보기 등급과는 달리 별의 절대 등급이라는 게 있다. 제각기 다른 거리에 있는 별들을 같은 거리에 있다고 가정한 객관적인 밝기이다. 세상의 일이나 사람의 품격도 이렇게 객관적 위치에 두고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직장을 다니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시내 서점에 책 사러 나갔다. 육교의 계단을 오르는 중 한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자그마한 몸을 쪼그리고 앉아 구걸하고 있었다. 가던 길을 갔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근처 가게로 가서 빵과 우유를 샀다. 돌아와 먹을 것이 들어있는 봉투를 소년에게 건넸다. 되돌아서 가는데 소리가 나 돌아보니 소년이 육교 아래로 빵과 우유를 던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를 향해 심한 욕을 하면서 가버렸다. 대학 생활을 갓 마치고 세상에 발을 디딘 나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순간 당황해서 나 역시 그 근처에 한참 서 있었다. 단지 배고플까 봐 건넨 순수한 마음은 지나가던 차들에 의해 짓밟히고 뭉개졌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생각에 그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직장 선배가 그런 아이들 뒤에 나쁜 어른들이 있다고 했다. 집 나온 어린이들을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상상도 못 할 이야기였다. 내가 건네야 할 것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그 소년이 하루에 채워야 할 돈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현실 세계는 이해가 안 될뿐더러 부조리 그 자체였다. 소년에게 관심을 보이지 말았어야 했다고 조언했다. 그냥 지나쳤어야 했을까. 그렇다면 온정을 베풀려고 한 것이 잘못한 일일까. 진짜 세상을 혼탁하게 만든 건 그 나쁜 사람들인데 왜 나와 그 소년만 힘들었던 것일까.


삶은 딜레마다. 그리고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인생이란 수많은 만남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가족이 그렇고 소중한 친구가 그러하다. 육교 위 소년과의 만남이 그렇고 심지어 악연조차 각자의 인생 속에 남아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만남은 중요하다. 만남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좋은 사람이 주위에 많으면 좋은 삶이 될 것이고 나쁜 인연들이 많으면 삶의 질은 나빠질 것이다.

법정 스님도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고 했다. 진정한 인연을 위해서라면 온 정성을 쏟고 스쳐 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치라고 했다. 그렇지만 인간은 더불어 사는 존재인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또한, 진정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기 정말 힘든 세상이 아닌가.


사회심리학자 데이비드 클락은 현대인의 인간관계를 공유적 관계와 교환적 관계로 구분하였다. 공유적 관계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 등 서로의 행복과 불행에 관심과 책임을 느끼며 상대가 고통을 겪어도 기꺼이 나누는 친밀한 관계이다. 반면, 교환적 관계는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주는 일종의 거래 관계이며 상대를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수단으로 본다. 이해관계이기 때문에 상대의 행복에 관심이 없다.

진심으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관계는 소중하다. 그런 좋은 만남이 많을수록 삶은 풍요로워지며 반면 쉽게 헤어질 수 있는 만남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비록 모순덩어리의 세상이라도 순수하고 진실한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세상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안목과 지혜가 절실하다. 겉보기 등급과 절대 등급의 차이, 거리 지수. 타인들에게 나의 거리 지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작가의 이전글 주머니 속의 눈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