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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아데스 Jul 28. 2023

‘라 코메디아(LA COMMEDIA)’를 끌어안다

마치 지옥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천정에서부터 길게 내려온 검은색 현수막은 나를 압도시키기에 충분했다. ‘라 코메디아’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던 전시회. 두 달 동안 끙끙대며 읽고 있었던 단테의 이야기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신곡 읽기에 다시 도전했다. 울타리 속의 삶을 정리하고 발 디딘 세상은 더는 내가 익숙하게 살아왔던 곳이 아니었다. 그전보다 더 따뜻한 세상이기도 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역동적인 카오스 그 자체였다. 자유의지가 중요한 세상이었다. 주어진 시간만큼이나 선택의 여지가 많았으며 결과에 대한 편차도 컸다.


11개나 되는 전시 공간을 모두 들어가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조심스레 지옥의 입구에 발을 내디뎠다. 검은색 방이 또다시 나를 마비시켰다. 숨이 막히는 듯했다.

‘나를 거쳐 고통의 도시로 들어가고...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퀼트로 표현한 림보(Limbo)의 방을 지나 사기, 위조의 지옥으로 들어가니 서로 속이며 사는 혼란한 세상만 보인다. 이 세상이 정말 지옥일까. 자신이 사랑한 사람을 과연 배신할 수 있을까.

책에서는 인간이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 했다. 화려한 아름다움과 그로 말미암은 집착으로 진정한 사랑은 늘 깊숙이 숨어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끝없는 쾌락만 좇는 것은 아닐까. 재물의 지옥은 ‘자본주의 최고’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씁쓸한 이 세상을, 잠시 되돌아보게 한다. 또 다른 지옥의 방. 분노와 우울은 자신 또는 타인에게 향하는 파괴적인 고통으로 어쩜 우리가 자주 접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떤 때는 나 자신도 우울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인간의 삶이 참 가엽게 여겨질 뿐이다. 욕심과 교만을 인정하면서 전시장과 하나가 된 나의 지옥은 끝없이 전개된다. 곁을 맴돌면서 우리를 얽매는 감정들.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외치면서도 혹시 그것들이 지옥인지 모르고 살아왔던 건 아닐까.

전시 공간을 들어갔다 나오면서 지옥이 주는 음산한 분위기 때문에 발걸음이 떨리기도 했다. 남의 시선도 의식했다. 하지만 작가들이 쏟아부은 열정을 생각하니 꼼꼼히 감상해야겠다는 의무감도 들었다. 책에서는 지옥을 표현하는 묘사가 너무 불편해서 몇몇 부분은 서둘러 읽어버렸는데 전시 작품으로 대하니 더 쉽게 다가왔다.

지옥의 마지막 방.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루키페르의 도움으로 동굴의 입구에 이르러 결국 하늘이 실어 나르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고 그렇게 해서 밖으로 나와 별들을 다시 보게 된다. 결국, 희망이다.


흔히들 고통스러운 날들을 지옥이라 표현한다. 나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경험했고 현재 많은 사람이 겪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용기를 내라는 상투적인 말은 건네고 싶지 않다. 공감이 울타리를 넘어 그들의 눈물을 함께 흘리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절망의 터널을 그저 묵묵히 손을 잡고 같이 걸어 나갔으면 한다. 결코, 희망 없는 지옥이 되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다시 한번 첫 문장을 떠올려 본다.

‘우리 인생길의 한가운데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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