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마 노부오의 「포옹가족」을 읽고
고지마 노부오의 「포옹가족」을 읽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은 1945년부터 1952년까지 연합군 최고사령부, 소위 GHQ의 지배를 받았다. GHQ는 일본에 남아있던 군국주의적 잔재들을 청소하고 서구식 가치관과 제도를 심어놓기 위해 애를 썼다. 불과 몇 년전까지 천황을 살아있는 신으로 숭배하던 일본인들은 이제 천황이 인간임을 인정하고 서구의 자유, 평등, 인권 같은 개념들을 부랴부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 시도들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어 오늘날 일본은(적어도 겉으로는)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라는 외피를 두르는데 성공했다. 이 작품은 그런 새로운 사회가 형성되어가는 와중에 한 가족에게 일어난 우스꽝스럽지만, 슬픈 비극을 그려내고 있다.
미국에 유학을 다녀온 문학연구자 미와 슌스케. 그는 아내 도키코, 고등학생 아들 료이치, 딸 노리코와 함께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한 걸 제외하면 그럭저럭 단란한 가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정부 미치요의 고백으로 아내와 평소 가족과 교류가 있던 젊은 미군 병사 조지가 내연관계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슌스케는 크게 당황하지만 이내 아내를 용서하고 조지와의 관계를 끊어내며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낸다. 이후에도 삐걱대던 부부는 아내의 제안으로 도쿄 교외에 서양식 주택을 새로 짓고 온가족이 이사가기로 결정한다. 새출발의 부푼 꿈을 안고 이사를 떠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되자 상황은 또 다시 변하기 시작한다.
슌스케는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힌 아내를 간호하며 어떻게든 단란한 가정을 지키려 애쓰지만 끝내 아내는 사망하게 되고, 큰 좌절에 빠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재혼에 집착하기 시작하며 주변인들을 곤란하게 만들더니, 결국 료이치의 가출로 가정은 붕괴되고 만다.
슌스케가 지키고 싶어했던 단란한 가정은 과연 무엇일까. 소설 속에서 슌스케의 모습은 위선적으로 보여진다. 슌스케 본인도 다른 여자와 외도를 저지르고, 아내에게 애정어린 관심을 품지도 않는다. 아마도 욕구없이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를 이상적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본인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했든, 슌스케는 아내를 진지하게 이해하고 삶의 동반자로 함께 나아가기 위한 자세가 부족했던 것 같다.
짧은 분량과 간결한 문체, 그에 대비되는 자극적인 소재로 눈을 떼지 못하고 하루 만에 다 읽은 작품이다. 미군 청년 조지로 대변되는 서구적 가치의 유입 속에서 어떻게든 전통적인 이상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가장의 우스꽝스럽고 비극적인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라는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