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일 카다레의 「죽은 군대의 장군」을 읽고
알바니아는 유럽의 남쪽 발칸 반도의 위치한 작은 나라입니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덕분에 오랜 역사 동안 여러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는데요. 그 덕에 알바니아는 유럽의 기독교 문화와 중동의 이슬람 문화가 뒤섞인 독특한 문화를 가지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알바니아는 1946년부터 1991년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엔베르 호자가 이끌던 알바니아 노동당의 독재를 받게 되는데 이 당시 알바니아는 '유럽의 북한'이라고 불릴 정도로 굉장히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국가였습니다. 국민들의 해외 출국이 금지되었고, 외국인들의 입국도 금지되었으며, 1976년에는 세계 최초의 무신론 국가를 표방하며 모든 종교를 금지시키기도 했습니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그런 알바니아가 배출한 세계적인 작가입니다. 1963년 「죽은 군대의 장군」을 발표한 이후 알바니아의 신화와 전설, 설화나 민담 등을 활용해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우화적으로 그려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24년 타계하기 전까지 꾸준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으며, 2019년에는 박경리 작가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토지문화재단이 주관하는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해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진 작가입니다.
저는 이전에도 이스마일 카다레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알바니아의 전해져 내려오는 복수의 관습 '카눈'을 통해 인간의 실존적 부조리를 그려낸 「부서진 사원」, 피라미드 건설을 통해 권력의 구조와 유토피아의 허상을 폭로한 「피라미드」, 호메로스를 중심으로 권력과 예술의 관계를 탐구한 「H파일」까지 총 세 권을 읽어봤습니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들은 마치 '동화'처럼 느껴집니다. 알바니아에 내려오는 전통 설화나 민담을 주요 소재로 삼은 데다, 간결하면서 환상적이고 은유적인 문체 덕분에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풍겨 마치 옛날 노인들이 들려주는 한 편의 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그 속에 담긴 내용과 소재는 동화처럼 결코 가볍지는 않지만요.
「죽은 군대의 장군」은 이스마일 카다레의 첫 데뷔작입니다. 알바니아에서 죽은 자국 군인들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알바니아를 방문한 장군과 사제가 알바니아 곳곳을 떠돌며 마주치는 광경들을 그려내며 전쟁의 비극성과 알바니아의 현실을 우화적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소설은 우중충한 날씨를 배경으로 어느 나라(직접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소설 속의 묘사나 역사적 맥락을 따져볼 때 이탈리아일 가능성이 큽니다.)의 장군과 사제가 비행기를 타고 알바니아로 찾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장군은 수십 년 전 알바니아에서 싸우다 죽은 자국 군인들의 유해를 조국으로 보내는 신성하고 숭고한 임무를 위해 알바니아 곳곳을 돌아다니며 유해 찾기에 매진합니다.
하지만 비와 안개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 험준한 지세, 현지 알바니아인들의 적대적인 시선까지, 임무가 쉽지 않아 고생하게 됩니다. 더구나 유해를 찾던 중 발견된 한 병사의 일기, 한 도시에 머물렀던 갈봇집의 사연, 그리고 조국에서 모두의 존경을 받는 Z대령이 전쟁 중 벌인 잔인한 행각까지 알게 되면서 장군은 전쟁의 비극적 성격을 깨닫고 점점 고뇌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자신이 맡은 임무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 채,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알바니아를 떠나게 됩니다.
전쟁이란 본질적으로 비극입니다. 아무리 숭고하게 포장하더라도, 전쟁에 참여한 일개 병사는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죽거나, 살아남더라도 끝없는 고통과 죄책감에 시달리다 여생을 마치게 되죠. 또한 전쟁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국가는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새기게 됩니다. 그 상처는 국가가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여러 번 발목을 잡게 되죠. 우리나라 역사만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의 부조리와 비극을 그려내 보입니다. 간결하면서 신비롭고 은유적인 서술 방식이 이러한 사실들은 은폐하지 않고 오히려 더 직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입니다. 또 외국인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당시 알바니아인들의 생활상도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사실 카다레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알바니아인들이 무뚝뚝하면서도 굉장히 호전적인 기질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카눈'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복수의 관습이 그런 알바니아인의 특징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이게 단순히 제 편견에 불과한지, 아니면 정말로 알바니아인들은 그런 성격인 건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