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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처럼 흐르고 흘러 큰 바다에 닿기를

교단일기

  그 아이의 이름에는 '강'을 뜻할 법한 한자가 포함되어 있다.( 사실 그건 나의 바람일 뿐 진짜 그 한자가 포함되었는지 확인해보진 않았다.) 고로 그 아이를 '강'이라 부르겠다.

  첫 만남에 내 소개를 하고 학급경영의 원칙을 말하고 1년간의 포부를 밝힐 , 강이는 책상에 앉아 투명하고 긴 물병을 손으로 밀고 당기면서 물통 속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한참을 지켜보다 부모님께 전달할 중요한 사항을 말한 후 확인 물었을 때 그는 내가 한 말의 핵심만 모아 내게 돌려주었고 단번에 똑똑한 아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첫 체육시간, 농구공 드리블을 연습했는데 손바닥을 쫙 펴서 내리치길래 다정한 목소리로 "강아~ 손으로 쥐듯 손가락을 살짝 오므려서 해보자" 하자 쳤는지 손가락 마디를 다 접어 고양이 발바닥처럼 만든 채로 농구공을 드리블하는 패기 보여주었다. 그런 모습에 화가 날 법도 했지만 왜인지 강이를 좀 더 지켜보고 싶었고, 내가 다른 곳을 바라볼 때 내가 얘기해 준 방법으로 드리블하는 모습을 보고는 지나가면서 "옳지~이제 강이 훨씬 잘하네~"하고 무심히 칭찬해 주었다.

  두 번째 체육시간, 한 손엔  말랑한 스티로폼 막대를 잡고 다른 손엔 공을 올려둔 컵을 잡고 상대의 공을 막대로 쳐서 떨어뜨리는 펜싱형 게임을 했었다. 균형감각과 유연성을 이용한 놀이지만 운이 작용하기도 하니 모두가 그저 즐기며 참여했는데 강이가 결승까지 올라가는 행운을 얻었다.  귀여운 미소를 가득 짓고 경기에 임하다 결승에서 상대에게 졌는데 순간 세상 절망적인 표정으로 게임 탓과 상대 탓을 하며 그 작은 입으로 분노를 한바탕 쏟아냈다.

  아이들은 그런 강이의 태도에 익숙해 보였으나 순식간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강이의 기분을 보니 썰물 땐 육지와 이어져있다 밀물이 밀려오면 뚝떨어진 섬이 되고 마는 외로운 무인도를 바라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무엇이 이 아이의 마음을 이리도 휙휙 움직이게 하는지..

  모둠활동을 하다 못마땅한 일이 생기자 친구들에게 미쳤다고 말하곤 스스로를 고립시키던 강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다음번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주제로 글쓰기를 하는 우리반규칙에 따라 강이도 글쓰기를 했는데 다시는 그런 말을 못 하도록 자신의 입을 묶고 몸을 묶고 좁은 곳에 가두고 두 시간 간격으로 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못마땅한 기분이 들 때 가장 빠른 방법으로 선생님에게 중재를 요청할 수 있고 그것이 부담스럽다면 친구들에게 못마땅한 부분을 한 번쯤 이야기해 볼 수도 있다고 다음에는 그런 방법을 선택해 보자고 권했는데 아직은 감정을 쏟아낸 후 스스로 고립되는 게 더 편하다고 답했던 강이..

 개학식날 했던 문장완성학습지에 학교 처벌이자 감옥이라적었던 강이..

  급식도 잘 먹고 발표도 잘하고 기분좋을 땐 활짝 핀 꽃마냥 환하게 잘 웃는데 어떤 지점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강이..


  놀이에서 졌을 때 "에이~아깝다~ 이길 수 있었는데.."하며 씩 웃고 넘어갈 강이 모습을 상상해본다.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선생님! 있잖아요~" 씩씩대며 와서는 기꺼이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도 상상해본다.  그 모습을 올해 꼭 보고 싶단 마음과 함께....


  고여있는 웅덩이가 아니라 제 이름에 쓰였을지도 모를 강처럼 흐르고 흘러 큰 바다에 다다랐으면 좋겠다. 모난 돌도 깎아내는 강줄기처럼 부드럽지만 힘찬 흐름을 가진 사람이 되어 세상에 좋은 쓰임새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와 함께 하는 올 한 해가 강이를 바다로 안내할 작은 물결 작용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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