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1

by Nchips

여기저기서 한숨과 고함, 그리고 앓는 소리가 나왔다. 화면에는 실시간으로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백윤호 팀장. 이거 잘 설명해야 할 겁니다."

"설명이고 뭐고! 이거 어떻게 수습할거야! 아니, 이게 수습이 가능한 거야!"

"지금까지 우릴 속인 겁니까? 백윤호 팀장!"

"팀장은 무슨! 배신자 새끼 아냐, 저거!"


선배 이사가 일단 백윤호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좀, 있어봐요들! 일단 빨리 각 부서에 수습전화 돌리고 있으라고!" 그는 계속해서 항의하는 임원진에게 고함을 치며 문을 닫았다.


"백윤호." 그리곤 무서운 얼굴로 두 손을 허리에 올렸다.


"설명해."


"........."


"안 해? 너 지금! 하...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포스트휴먼이라니, 저건 그냥 상업용 로봇이라고! 그딴 식의 시위는 우리랑 완전 반대인 거 알아 몰라!"


"........."


"대답 안해!" 선배 이사는 답답한 듯 넥타이를 거칠게 풀었다.


"....수습하겠습니다."


"니가 어떻게! 뭘 어떻게 할 건데! 이미 다 퍼졌어!" 선배는 계속해서 욕설을 내뱉었다.


"3년 전 프로젝트부터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이번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프로젝트 유출에, 인질극에, 회사 관계자는 로봇윤리나 떠들어대고!" 이후 담배를 꺼내 씩씩거리며 불을 붙였다. 던전에서 올라오는 화를 누른 채 크게 한숨을 쉬었다.


컨테이너에서는 여전히 고함소리와 전화소리로 시끄러웠다. 경호업체는 몇 시간 전부터 아무 대책없이 대기만 하고 있다.


그야말로 난장판. 하지만 백윤호는 망부석이 된 듯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 걸 대체 왜 찍은 거냐? 알만한 놈이." 선배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백윤호는 한참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답답해진 선배는 조용히 혀를 찼다. 이미 엎질러진 물에 굳이 더 퍼부울 필요가 없다고도 판단했다.


그는 머리를 벅벅 긁더니, 결국 먼저 말을 꺼냈다.


".....한동안 노동용 휴머노이드 로봇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로봇윤리니 뭐니 하는 인식 자체가 없었어. 그럴 만도 하지. 그래봤자 물류 창고에서 물건이나 나르고, 집에서 집안일 정도만 했으니까. 하지만 우린 달라. 연애용, 결혼용 로봇은 차원이 다른 얘기라고." 선배는 말을 이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이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원이자 시장에 한 획을 그을 기획이었어. 이것만 성공하면 세계 탑이 뭐야, 그냥 독점이지."


그리곤 담배를 다시 입에 가져다 댔다. 연기를 내뿜는 그의 모습은 현재 잘못된 상황을 반영하듯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그래, 알아. 우린 환상에 젖어 있었어. 혁신과 이상. 그 이면에 뭐가 있는지, 모두 알고 있었지만 외면했지. 사실 그게 알게 뭐야. 실보다 득이 훨씬 더 많은데. 그럼 대의를 위해 포기할 건 포기해야지."


"소비자는 정상인보다 비정상인이 더 많겠지. 업소용, 개인 해소용, 판타지 충족용 등등. 뭐, 연애 관련 사업이 다 그렇잖냐. 더럽고 역겨운 부분도 잘 포장해서 팔 수 있고, 성공하면 천박함이 세련됨이 될 수 있는. 암암리에 진행되던 그 모든 일들이, 로봇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거. 그거 왜 모르겠냐."


"관계의 핵심은 감정인데, 감정은 유일하게 인간과 다른 개체를 구분하는 기준이고. 로봇이 감정을 가지고 선택을 하게 되면, 그건 더 이상 그냥 쇳덩이가 아니라는 거. 다들 알고 있지만 회피하는 거야. 그게 돈이 되니까. 자유의지를 가진 로봇은, 성가신 인간과 다를 바가 없어. 그리고 그건 소비자의 욕망과 완벽하게 반대되는 특징이고."


백윤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긴 회사야. 회사는 이윤을 최우선으로 추구해. 그 어떤 가치도 이윤을 뛰어넘을 수 없어. 그게 진리야. 고리타분해도 그건 변하지 않아. 회사는 이윤을 추구한 덕분에 생존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우린 그 돈을 가지고 입고, 먹고, 살잖아."


“...죄송합니다.” 백윤호는 작게 말했다.


선배는 한숨을 쉬더니 대답했다. “하... 일단 윤서진부터 좀 꺼내고. 그다음에 저건 나중에 네가 책임지고. 아마 징계론 안 끝날 거다.”


“...예.” 백윤호의 어깨가 한껏 내려앉았다.


“뭐해, 새끼야! 빨리 윤서진 안전부터 확보해! 카이 쪽에서 연락오면 빨리 협상부터 하고! 일단 사람은 살려야 할 것 아냐!”


“네!” 백윤호는 그제야 눈에 힘을 주고 경호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깼어?" 카이는 부얶의 보조 조명만 킨 채 컴퓨터를 두드렸다.


"...뭐야." 서진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다 움찔했다. 온 몸이 의자에 밀착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저택 안은 어두컴컴하고, 카이는 어느 인공지능과 계속해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뭐하는 거냐고, 지금." 서진이 상황을 조금 파악한 듯 했다.


"뭘 뭐해. 보면 몰라? 아, 너 그거 알고 있었어? 백윤호가 나랑 친구였다는 거." 카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서진은 당황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는데. 달콤했던 카이의 얼굴과 말투, 다정한 온기는 온데간데 사라졌다. 대신 처음 보는 냉정하고 공허한 눈빛만이 자신을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머리 굴리지 마. 너도 진작에 이상하다고 느껴잖아. 내가 기억이 지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 카이는 의자를 빙그르르 돌리더니, 냉장고에서 바나나우유 하나를 꺼냈다. 그리곤 빨대를 탁 꽂아 서진에게 건넸다.


"마셔."


서진은 의심스런 눈초리로 카이를 쳐다보았다.


"뭐, 싫음 말고." 그대로 바나나우유는 카이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난 네가 참 웃겨. 부엌 서랍장에서 반지도 찾고, 백윤호랑 아는 것 같은 낌새도 느꼈는데, 왜 날 그대로 믿고 싶었을까? 내가 네 취향이라서? 아님 내가 너의 판타지를 모두 충족시켜줘서? 그래서 다 아는데도 모른 척 한 건가..." 카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누가봐도 난 너한테 관심이 없는데. 넌 그냥 내 껍데기에 반해서 홀랑 넘어간 거지. 덕분에 난 일이 쉬웠지만. 3년 전 백윤호가 네 얘길 많이 했거든. 윤서진이라는 애가 참 좋다고."


'백윤호가... 그런 얘길 했다고?' 서진은 속으로 놀랐다.


서진은 슬쩍 카이를 바라보았다. “대체 3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노트북만 바라보던 카이가 서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전에 살짝 머금은 미소가 사라진 상태였다.

서진은 다시 눈치를 보았다. 이 사건의 본질은 역시 3년 전 일 때문이다. 카이에게 제대로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이 모든 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이야기를 끌어내서 그를 자극해야 한다.

‘백윤호는 지금 이 상황을 알까? 내가 여기 묶여있다는 거.’ 서진은 불안하게 발을 꼼지락거렸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금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그에게 전해야 했다. 그러려면 카이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려야만 한다. 그리고 서진도 궁금했다. 도대체 왜 카이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는지. 회사에서 뭘 숨기고 있는 건지. 그리고 백윤호는 3년 전 사건과 어떤 식으로 이어져 있는지.

유서린이야.” 카이가 갑자기 말했다.


“뭐?” 서진은 자신의 생각이 들킨 것 같아 괜히 움찔했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인간. 그리고...난 그 여잘 죽였어. 백윤호가 보는 앞에서.” 카이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죽였....다고?”


그는 갑자기 노트북을 탁 덮더니 서진의 바로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둘은 완전히 마주본 상태였다.

“어때, 너 내 얘기 들어볼래? 3년 전에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는 서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말했다. “들어봐. 그래야 이 긴 여정이 끝날 테니까. "


그리고 덧붙였다. "넌 참 재수없는 인간이야. 남의 사랑 싸움에 휘말려서 험한 꼴이나 당하고."


서진은 자신만 아는 이야기를 조잘거리는 카이가 답답했지만, 일단은 들어야 했다. 그리고 탈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 뭐야, 대체? 네가 이러는 진짜 이유."


"좋아, 알려줄게. 3년 전 이야기. 나와 유서린, 그리고 백윤호의 이야기를.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그리고 너희가 얼마나 멍청했는지."


카이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의 기억이 3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그가 자신의 첫 기억 속에서 눈을 뜨자, 유서린이 나타났다.


"안녕, 카이. 이 세상에 온 걸 환영해."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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