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 가는 길

따뜻한 작은 관심들

by 동남아 사랑꾼

출장 때문에 부산에서 서울 집으로 올라온 밤이었다.


아직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3시 58분, 따르릉— 휴대폰 벨이 울렸다.

전날 맞춰 둔 알람인가 했는데, 화면엔 부산에서 걸려온 집사람 이름.


“공항 갈 때야. 일어나.”

잠결에 묻어나는 그 목소리가 새벽 공기보다 먼저 내 귓가를 깨웠다.


택시를 부르니 기사님이 말했다.

“이런 일찍 어디 가시나요?”

“마닐라에 회의하러 갑니다.”

“그럼 영어로 회의를 하시는 거예요?”

조금은 낯선 관심의 질문에 나는 짧게 “네.” 하고 웃었다.


광화문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공항 리무진에 오르자

버스 기사님은 손을 비비며 말했다.

“안에서도 손이 얼 정도로 춥네요.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그 말 한마디, 두 사람의 작은 배려가

깊은 새벽 한파 속에서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데웠다. 정치적 소용돌이 속, 여전히 이어지는 나라의 추위도그 순간만큼은 잠시 잊혀졌다.


현직을 떠난 뒤 ‘대중교통 이용 원칙’을 지키겠다던 나는 오늘만큼은 추위를 핑계로 공항까지 택시를 탈까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결국 집 앞에서 택시를 내려 호텔 앞 리무진을 기다렸고, 그 선택이 묘하게 흐뭇하다.


버스 안엔 나 혼자뿐이었다.

새벽 도로를 전세 낸 듯,

따뜻한 난기류처럼 기분도 가벼워졌다.

이렇게 싼값에, 이렇게 편하게,

그리고 사람들의 작은 관심을 등에 업고

나는 조용히 마닐라로 향하는 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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