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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가 좋은 이유

똥녀 이야기

by 동남아 사랑꾼

내 마누라는 자칭 똥녀다.


우리집 '히꼬'(Xico, 멕시코에서 와서 Mexico의 이름을 따서 작명, 3살 2개월)

내가 그리 이름을 부쳤으면 지랄할 뻔도 한데 자기가 작명한 거니 똥녀가 저속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가 나와 떨어져 서울 살면서 우리 '히꼬(Xico)'가 산책 중 하루 세네 번 똥 싸면 봉지에 담아 가방에 넣고 다니니 똥 냄새가 풀풀 나기 때문에 붙여진 자칭 주홍글씨다.


그러던 그녀가 10일 전 부산 해운대에 합가를 했다. 7개월 만이다.


이른 아침과 저녁에 혼자서 걷던 해운대 해변 산책길이며 모래사장도 이제 셋이 한다. 히꼬가 아침에 해운대 파도타기 묘기가 신기롭다. 썰물에 맞춰 같이 물가를 질주 하다가 밀물엔 바닷물이 모래사장 가장자리에 닿기 5~10센티 먼저 아슬아슬하게 도망친다.


바다가 없는 멕시코 시티(해발 2200미터)에서 나서 몇 개월 살다가 바다가 처음인 히꼬가 물을 겁내지 않고 좋아하는 걸 보니 신기하다. 저 멀리 형광등색의 '단속' 조끼를 입은 현장 감독원이 다가온다. 얼른 목줄을 맸지만 그는 말한다. "선생님, 목줄 풀면 벌금입니다" 리고 한다. 그러면 안되지만 난 "예 예"하며 건성으로 답변하며 생각한다.


한집 걸러 반려견이 있고, 정확히 말하면 셋집 당 하나다. 특히 해운대엔 개 천국이고 반려견이 가족의 일원이 된 지금, 반려견을 위한 자유공간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해외에 가보면 개들을 위해 pet pool도 있고 목줄 없이 노는 파크도 있음을 보았기 때문에 해운대 모래사장, 특히 웨스틴 조선 모래사장 앞에 반려견의 해방공간을 마련하면 동네 주민뿐 아니라, 한여름 해수욕장에 오는 내방객이 데리고 오는 반려견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대형견과 소형견간 싸움이 나면 책임문제도 있고, 그렇다고 분리 공간을 만들 수도 없고, 이러니 분명 누군가는 웃기는 이야기라고 할지 싶다. "하하".


한참 불법으로 신나게 뛰놀던 히꼬가 모래사장을 나오자 말자 굵은 좋은 똥을 싼다. 서울엔 찾기 힘든 쓰레기통을 찾는데 여기저기 똥통이 많아 마누라가 더 이상 가방에 똥봉지를 넣을 필요가 없어 냄새도 안 난다. 더욱이 냄새 완화를 위해 쓰던 향수도 더 이상 필요 없게 돼 부산이 좋다고 그가 말한다.


그런데 집사람이 출근하는 나한테 향수를 뿌려준다. 내가 청소년기의 성장통(growing pains)이 아닌, 노인들이 겪는 노년통(aging pains)의 자연 현상인 노인 냄새가 난다고 비싼 향수를 듬뿍 뿌리고 뿌린다. 그런들 늙어감을 막을 수 없고, 세상 구린내에 오랫동안 밴 내 몸에서 향기로운 향내가 날리는 만무인데도 말이다. '히꼬의 똥보다 더 구린 게 인간세상엔 많기도 하지' 속삭이며 출근길을 서두른다.


부산 해운대에서 서울 똥녀가 아닌, 보통의 해운대 할머니가 된 그가 본연의 향기를 지니며 히꼬와 여기서 즐겁게 보냈으면 한다. 그 덕분에 나도 더 행복해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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