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의 겨울은 날씨의 변덕이 심해, 오전에 잔잔했던 파도가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변하면서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배편은 끊긴다. 어제가 그런 경우였는데, 오전 9시 20분 배와 10시 20분 배만 운행하고 나머지는 결항되었다. 오늘과 내일은 제주도 전역이 강풍 한파 대설 특보가 내려 종일 결항될 것이다. 결항이 되면 오도 가도 못하고 섬에 갇히게(?) 된다.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평소에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어제는 택배로 받은 책상과 책장을 - 가파도에 놀러온 친구가 조립해 주었다. - 재배치하고, 박스에 있었던 책들을 꺼내 책장에 정리했다. 거실에 있는 책들마저 옮기니 조그만 거실이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친구가 고양시에서 보내준 컴퓨터도 부품들을 연결하여 책상에 배치했다. 휑했던 작은 방이 아담한 공부방으로 꾸며졌다.
오늘은 비가 내려 우비를 입고 텅 빈 매표소로 향했다. 생각보다 바람이 거세 돌아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매표소의 인터넷 환경과 고요하고 든든한 매력이 나를 더 끌어당겼다. 강풍에 우비가 벗겨지는 낭패를 당했지만 매표소 안에 들어가니 그렇게 맘이 편할 수 없다. 인적 끊긴 거리에 불어오는 바람과 사선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도 이 고요함을 방해 못 한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읽고 있는 책을 꺼내 책상에 올려놓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만들어 자리에 앉는다.
오전이 지나고, 청보리 미숫가루 한 잔에 허기를 달래며 계속 독서를 하는데, 갑자기 비 오는 하늘에 무지개가 뜬다. 비 오는 중에 무지개를 본 것은 처음이라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었다. 무지개는 희망과 약속이라는데, 희망도 약속도 버리고 내려온 곳에서 보는 무지개가 아이러니하다.
매표소가 아무리 편하다 해도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가야 한다. 우박으로 변한 비를 맞으며 급히 귀가했다. 몸이 추우니 따뜻하고 든든한 음식을 먹어야겠다. 냉장고를 뒤져 돼지고기, 감자, 양파, 대파, 간장, 된장, 고추장을 꺼내 짜글이를 만든다. 새로 따뜻하고 흰 밥을 지어 밥 위에 고기와 국물을 듬뿍 얹어 먹으니 몸이 따스해지고 피로가 밀려온다. 보온매트를 켜고 때 이른 오후잠을 잤다. 일어나 이번에는 곰탕국을 끓여 계란과 파를 넣어 든든히 먹는다. 먹고 자고 먹고~~. 쉬는 날이 주는 축복이다.
내일은 아침에 김밥을 싸고, 오랜만에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매표소로 가서 못다 한 독서를 하다 돌아와야겠다. 그러면 하늘은 맑아지고 바람은 가라앉고 파도는 잔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