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가파도에 온 것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생활점검하러 왔다고 말했고, 내 후배 성택이는 면회 간 것이라 말했다. 많은 지인들이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응원했다면, 도서평론가 이권우는 "너 죽었다."라고 팩폭을 날렸다. 어쨌든 아내가 온 지 나흘이 지났다. 아내가 온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정작 아내는 노동하러 왔다고 말한다. 아내는 정말 노동하러 온 여인처럼 온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쓸고 닦고 정리하고 있다. 내가 살림을 펼쳐놓고 하는 스타일(?)이라면, 아내는 살림을 정리하며 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버리지 못하고 모으는 사람이고, 아내는 웬만한 것은 버리고 정리 정돈하는 사람이다. 아내가 온 후 조금씩 집안의 모습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거실과 부엌에 늘여놓았던 세간살이들이 어느새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할 곳에 꼭 필요한 것들만 있고, 다른 것들은 싱크대 안쪽으로, 탁자 밑으로 다 숨어 들어갔다. 온갖 물건들이 쌓여 있었던 식탁에 작은 꽃병 두 개가 자리를 잡았다. 남자 자취집이 변하여 여자의 살림집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데, 후배 한준이 부부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가 가파도로 내려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아예 제주도로 내려왔다며 아내 가기 전에 한 번 보자고 한다. 일요일이면 아내의 생일이기도 하니 하루 정도 시간을 내 달란다. 마침 금요일이 쉬는 날이라 아내와 모슬포에 가서 이것저것 구입하고 하루쯤 밖에서 지내기로 계획했었는데, 아다리가 맞았다. 금요일 오전에 나가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여 운진항 무인택배함에 보관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한준이가 렌터카를 몰고 우리 앞에 선다. 원래는 가파도로 오기 전에 일산에서 한 번 보자고 한 것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보지 못하고 한 달이 넘어 버렸다. 그런데 그 약속을 기억하고 아예 우리 앞에 떡 나타난 것이다.
한준이가 모는 렌터카에 앉아 편하게 이동하여 한정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송악산 공원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모슬포 호텔에 들러 짐을 풀고, 다시 흑돼지 숯불구이집으로 가서 흑돼지 정식을 먹으며 술 한 잔을 마셨다. 아내와 나는 한준이 부부가 하자는 대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바쁘게 하루를 보냈다. 시속 15킬로미터로 살다가, 갑자기 시속 60킬로미터가 넘는 삶을 사니 멀미가 났다. 평생 해보지 않았던 차멀미를 했다. 어느새 나는 가파도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을 운전한 내가 차멀미를 하다니. 뱃멀미조차 하지 않았는데.^^)
한준이 부부는 우리에게 주려고 파주에서 해장국도 포장해 오고, 콩국물도 가져오는 지극 정성을 보였다. 음식값이며 커피값, 술값, 호텔숙박비 중 어느 것 하나 지불하려는 우리를 한사코 말리며 오늘은 아내의 생일잔치라고 생각하라며 모든 값을 치렀다.(아이고, 부담스럽게스리.) 하루를 같이 지내고 운진항까지 끝까지 실어다 주는 서비스를 해주고 쿨하게 떠났다. 아침 첫배를 타고 가파도로 돌아오니 이제야 폭풍 같은 하루가 지나고 제 속도를 찾은 듯하다. 고맙다, 한준아 미정아! 너희들 덕분에 실컷 웃고 떠들었다. 늘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