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자유에서 온다. 자유로운 질문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철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집에서 자유롭게 물을 수 없다면, 학교에서 자유로운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사회가 자유로운 질문을 던질 수 없는 곳이라면, 철학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철학은 자유인의 학문이다. 노예는 질문하지 않는다. 주인의 말에 복종할 뿐이다. 복종이 있는 곳에 철학은 없다. 그런데 만약에 노예가 “나는 왜 자유인이 아니고 노예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는 위험한 존재가 된다. 그 질문을 던지는 한, 그는 결코 노예로 살 수가 없다. 그는 자유인이 되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언제 그 노예는 자유인이 되는가? 주인의 손에서 벗어날 때부터인가? 아니다. 질문을 던질 때부터이다. 그가 “나는 왜 자유인이 아니고 노예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바로 그때부터, 그가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을 꿈꾸는 한 더 이상 복종만 하는 노예는 아닐 것이다.
정반대로 설령 그 노예의 주인이 노예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고 할지라도 노예상태를 그리워하고, 노예로 되돌아가려고 한다면 그는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이다. 그러니까 노예와 자유인은 처지의 문제가 아니라 질문의 문제이다. 자유인만이 자유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2.
자유는 홀로 된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유를 무엇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탈출이나 해방이나 삶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어디서 벗어나든, 무엇으로부터 놓이든, 그것으로 삶은 완성되지 않는다. 자유(自由)라는 말은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는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목표가 아니고 출발점이다.
노예의 삶은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항상 주인이 우선이다. 주인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노예이다. 이때 주인은 사람만이 아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 그 어느 것도 주인이 될 수 있다.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주인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다. 자유인은 자신이 주인인 사람이다. 자신이 출발점인 사람이다.
상대방이 자유롭지 않는 한 자유는 불가능하다. 불평등한 관계에서는 친구를 맺을 수 없다.
3.
자유(freedom)는 친구(friend)와 어원이 같다. 친구가 나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를 뜻하듯이, 자유는 그 무엇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과 같다.
과거에 노예였던 내가 주인이 되고, 과거의 주인을 노예로 만든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복종과 억압 관계를 바꾸었을 뿐이다. 좋은 관계는 복종과 억압의 상하관계가 아니라, 우정과 사랑의 평등관계이다. 평등을 전제로 하지 않는 자유는 없다.
상대방이 자유롭지 않는 한 자유는 불가능하다. 불평등한 관계에서는 친구를 맺을 수 없다. 친구 맺기란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정과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고, 일방적으로 보살피는 관계에서는 불가능하다. 상대방을 억압하면서 사랑한다 말하고, 상대방을 무시하면서 친구라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불평등을 양산하는 사회에서는 우정도, 사랑도, 자유도 없다. 좋은 관계는 불평등을 제거하고 자유를 확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