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윤 Jun 03. 2024

5. 노인

도덕경 20장

1.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분별과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젊었을 때에는 꼬치꼬치 따졌던 것이 이제는 그냥 넘어가는 일이 되었다. 속지 않으려고 울타리를 쳐놓은 마음이 변하였다. 속여도 그냥 속아준다. 거짓말인 줄 아는데 그냥 웃어넘긴다. 슬퍼도 크게 슬프지 않고, 기뻐도 크게 기뻐하지 않는다. 슬픔도 기쁨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인가. 사태를 그냥 덤덤하게 바라본다.      

잔치집을 기웃거리지 않게 된다. 먹는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많이 가져도 쓸 데가 없어, 소유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그저 마음 편하게 하루하루 지내는 것으로 만족한다. 심심한 것을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별일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가. 집착에서 놓이는 것은 얼마나 평안인가. 그러니 인생이여, 안녕(安寧)하라.     


멀리 가지 못해도, 신기한 것들을 보지 않아도 아무 문제없다. 주변에 있는 것들을 귀히 여겨, 걸으며 온갖 것들에게 인사를 나눈다. 돌들아, 풀들아, 꽃들아, 나무야, 바람아, 강아지야, 고양이야, 담장아, 집들아, 안녕! 파도야, 물고기들아, 언덕아, 들판아, 이제는 잠시 쉬고 있는 밭들아, 안녕! 손 내밀면 잡힐 듯 보이는 한라산아, 송악산아, 산방산아, 단산아, 군산아, 안녕!     

나를 키우고 살게 하는 모든 자연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어미가 나를 키웠듯이, 자연이 나를 키웠다. 나에게 물과 공기와 온갖 음식재료를 아낌없이 주었다. 이들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이가 들면 이들과 더욱 친하게 지내야지. 숫자가 쌓이는 통장의 잔고를 바라보고 흐뭇하게 웃는 짓 그만 두고, 나를 먹여준 자연을 바라보고 웃어야겠다.     


2.

노자(老子)의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이다. 사람들이 불렸던 이름[字]은 백양(伯陽) 또는 담(聃)이다. 호적상으로는 이이(李耳)라 적고, 일상적으로는 이백양 또는 이담이라 썼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은 노자(老子), 또는 노담(老聃)이다.

원래 훌륭한 스승을 ‘성씨+자(子)’를 써서 존칭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孔子), 맹자(孟子), 장자(莊子), 손자(孫子)는 모두 성씨 뒤에 ‘자(子)’를 붙여 높인 경우다. 그렇다면 가장 자연스러운 존칭은 이자(李子)가 된다. 그런데 노자(老子)가 되어 알려졌다. 어떤 학자는 이(李)와 노(老)의 형태적 유사성을 들어 오류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어떤 학자는 노자가 태어날 때부터 늙은이 같은 모습이어서 그렇게 붙였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노자는 ‘애늙은이’라는 멸칭을 유지한 것이니 설득은 떨어진다.

우리가 쓰는 어르신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나이가 들은 사람을 높여 그렇게 부르지만, 옛날에는 존경받을 만한 노인에게 붙여주는 호칭이었다. 노자(老子)가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하니 ‘어르신’으로 대접받아 노자라고 불렸을까. 모르겠다. 그런 전문적 영역은 학자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냥 편하게 널리 알려진 호칭인 노자(老子)로 기억하자.     


어쨌든 노자에게도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혈기충천한 젊은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자신의 모습을 회상해 보니, 남들이 보기에는 잘 웃지도 않고, 혼자 있기 좋아하고, 이리저리 떠돌고, 사리에 밝지도 않고, 경제적 여유도 없는 빈털터리 백수에 어리석은 멍청이로 평가받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했을 것이다. 왜 나는 인사이더로 살지 않고, 아웃사이더로 살았을까? 노자는 자문해 본다. 남들이 가리키는 성공의 방향으로 일로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왜 나는 남들이 택하지 않은 길 없는 길을 찾아 헤맸던 것일까? 뭐가 잘못된 것일까? 뭘 잘못 먹었나? 그러다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겠지. 아니야, 나는 길러진 대로, 먹은 대로 산 거야. 나를 먹이고 키운 자연을 따라 사는 것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이지. 후회하지 말자. 남들이 뭐라 하든, 이 길을 가자. 그리하여  <도덕경> 20장에 이런 고백을 남겼다.

.     

배우는 일 그만두면 근심이 사라지네.

맞다 틀리다는 생각

좋다 나쁘다는 판단

두렵다 두렵지 않다는 마음

얼마나 차이가 날까?

너무 황당하지 않나?     


사람들은 잔치집처럼 희희낙락하고

소풍 온 것처럼 기뻐하는데

나 홀로 웃지도 않고

떠돌아도 갈 곳이 없네.     

사람들은 모두 여유있어 보이는데

나 홀로 빈털터리

나만 멍청이처럼 어리석어라.     


사람들은 밝은데 나 홀로 어둡고

사람들은 똑똑한데 나만 번민에 빠져

파도처럼 밀려다니고 바람처럼 떠도는가.     

사람들은 다 목표가 분명한데

나만 홀로 고루하고 촌스러워라.     

왜 나만 홀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나를 먹이는 엄마[食母]인 자연을 귀하게 여기는가. (20장)     


絶學無憂 唯之於阿 相去幾何 善之於惡 相去何若 人之所畏 不可不畏 荒兮 其未央哉

衆人熙熙 如享太牢 如登春臺 我獨 泊兮 其未兆 如孀兒之未孩 乘乘兮 若無所歸

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 我愚人之心也哉 純純兮 衆人昭昭 我獨若昏 衆人察察 我獨悶悶

忽兮 其若海 漂兮 若無所止 衆人皆有以 我獨頑且鄙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Stop thinking, and end your problems.

What difference between yes and no?

What difference between success and failure?

Must you value what others value,

avoid what others avoid?

How ridiculous!     

Other people are excited,

as though they were at a parade.

I alone don't care,

I alone am expressionless,

like an infant before it can smile.     

Other people have what they need;

I alone possess nothing.

I alone drift about,

like someone without a home.

I am like an idiot, my mind is so empty.     

Other people are bright;

I alone am dark.

Other people are sharper;

I alone am dull.

Other people have a purpose;

I alone don't know.

I drift like a wave on the ocean,

I blow as aimless as the wind.     

I am different from ordinary people.

I drink from the Great Mother's breasts.     

이전 05화 4. 하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