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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04. 2024

6. 풍랑

도덕경 23장

1.

인생에 풍랑이 일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시련과 고난도 풍랑이지만, 기쁨과 성공도 풍랑이다. 몸이 고달파서 힘든 것보다 마음이 동요해서 힘든 적이 더 많았다. 일이 잘 안 될 때 근심과 걱정만큼이나 일이 잘 나갈 때 염려와 두려움이 일렁였다. 인간에게는 마음이란 요물이 있어, 잠시도 쉬지 않았다.

그 마음을 잘 조절하는 것이 옛사람들의 수련이었고 행이었다. 첫마음을 잃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고, 마음을 잘 관찰하라는 사람도 있었고, 마음을 가라앉히라는 사람도 있었고 마음을 비우라는 사람도 있었다. 이 모든 처방을 내놓은 사람들은 어쩌면 그 증세를 가장 심하게 앓은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첫마음을 잃고 길을 헤매본 사람만이 첫마음을 그리워하게 된다. 마음이 가는 곳을 알지 못해 여러 갈래의 마음으로 고통을 당해본 사람만이 자신의 마음꼴을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마음이 들떠 허황된 세계에 살면서 어지러워 본 사람만이 마음을 가라앉혀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마음에 온갖 것을 채워 그 무게에 짓눌려 본 사람만이 마음 비움의 중요성을 절감할 것이다. 고통이 있어야 진단이 있고, 진단을 해야 처방할 수 있다.


고통이 생략된 처방전은 가짜다. 지금은 처방전을 전문의가 발행하지만, 옛사람들은 자신의 의사가 되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 고통의 증세만큼이나 고통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중요했다. 원인을 알게 되면 근본적 해결이 가능했다. 도가 사상가들이 마음을 비우라고 처방한 것은 마음이 욕망과 욕심으로 가득 찰 때 가장 큰 고통이 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불가는 더 나아가 마음 자체의 존재를 해체함으로 비움마저 비우라고 처방했다.     

2.

가파도에 내려오고 나를 잃었다. 육체적으로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연속체지만, 심적으로는 많이 단절되었다. 단절되지 않고는 이 작은 섬에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가파도의 청년들은 가파도가 답답하여 대처로 나가길 소망했다. 이 섬에서 살아가려면 답답함의 정서를 기본값으로 설정해야 했다. 답답함이라는 정서에서 욕망을 빼면 한가함이 되었다. 심심함이라는 정서에서 욕구를 빼면 평안함이 되었다. 대처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욕망하고 욕구하면 이곳에서는 살 수 없다. 그 마음을 내려놓자 썩 괜찮은 삶이 펼쳐졌다. 보이지 않던 새로운 풍광이 눈에 들어오고, 들리지 않던 작은 소리들이 귀에 들어왔다. 가만히 눈을 뜨고 귀를 열어두고 멍 때리면(?) 평소의 내가 사라지고, 새로운 내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물론 단절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불쑥불쑥 과거의 욕망이 눈을 떴고, 욕구를 채우고자 들떴다. 그 마음이 일렁일 때면 하루종일 심란하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고독이 아니라 외로움이 밀려왔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이 불쑥 등장하여 마음을 휘저어놓고 사라졌다. 이렇게 마음이 일렁일 때에는 가파도의 풍랑을 바라보았다. 풍랑이 아무리 높게 일어도 하루도 가지 못했듯이, 내 마음의 풍랑도 이내 가라앉을 것이다 위로했다. 비가 세차게 몰아쳐도 한 때를 넘기지 못하듯이, 이 불같이 들뜬 마음도 곧 식을 것이다 상상했다.     

3.

노자는 말이 없는 사람일까, 말이 많은 사람일까? 오랜 기간 왕이 측근으로 공무를 담당했으니 말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적 세상에 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러하듯, 공무원 노자 역시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때를 잃은 말, 때를 맞추지 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고 갔는지 목도했을 것이다. 그는 권력의 부침을 보았고, 사람의 흥망성쇠를 보았다. 그래서 말을 하되 신중하고 하고, 해야 할 말만 하고, 해야 하는 방식으로만 말했을 것이다. 신중한 말 뒤에 숨어있는 침묵의 가치를 새기고 또 새겼을 것이다.


그리하여 평생 남긴 글이 오천여 자밖에 되지 않았다. 그 오천여 자 속에 자신의 마음을 다 담지는 못했을 것이다. 빙산의 일각. 말보다 더 많은 말잃음을 읽어야 한다. 말의 즐거움보다 말잃음의 즐거움을 더 즐겨야한다. 그리하여 노자는 이렇게 23장을 썼다.   

       

말을 아끼고 자연의 이치를 따르세요

회오리바람도 아침나절을 넘지 못하고

소낙비도 하루 종일 내리지 못해요

누가 멈추지요?

천지가 하는 거예요


천지도 이처럼 오래가지 못하는데

사람의 일이야 오죽하겠어요     

그러니 도를 따르는 자는 도와 하나가 되고

덕을 따르는 자는 덕과 하나가 되고요

말을 잃은 자는 잃음과 하나가 되지요.

도와 하나 된 자를 도가 기뻐하고

덕과 하나 된 자는 덕이 기뻐하지요

말잃음과 하나 된 자는 말잃음을 기뻐하네요.     


希言自然 瓢風不終朝 驟雨不終日 孰爲此者天地 天地尙不能久 而於人乎

故從事於道者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同於失者 失亦樂得之

  

Express yourself completely,

then keep quiet.

Be like the forces of nature:

when it blows, there is only wind;

when it rains, there is only rain;

when the clouds pass, the sun shines through.     

If you open yourself to the Tao,

you are at one with the Tao

and you can embody it completely.

If you open yourself to insight,

you are at one with insight

and you can use it completely.

If you open yourself to loss,

you are at one with loss

and you can accept it completely.     

Open yourself to the Tao,

then trust your natural responses;

and everything will fall into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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