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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02. 2024

4. 하늘

도덕경 7장

1.

중고등학교 시절, 하늘을 보고 살았다. 가장 높고 가장 드물고 가장 귀한 것들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바른 방향이라 믿었다. 인간이 품었던 이상 중 가장 고귀한 것이 무엇인지 따져 물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주변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많아서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따르라고 말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좋았다. 선하고, 이웃을 돌보며,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물론 그것이 다는 아니었지만.)


대학 시절, 하늘에서 이루려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재는 가까웠고 하늘은 멀었다. 기독교는 비겁했고, 선배들은 용감했다. 하늘나라를 추구하며 사는 것보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민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교과서보다는 거리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고, 교수들보다 노동자들에게서 더 진실되고 진솔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더 높아지려면 더 낮아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현장(?)으로 들어갔다. 힘들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내려 했다.


장년이 되자, 눈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생계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닥치는 대로 하며 살았다. 다행인지, 가르치고 쓰는 일에 재능이 있어 그 재능으로 밥벌이를 삼았다. 그렇게 일상을 하루하루 꾸려가는 동안, 드높은 이상도 치열한 투쟁도 거리에서 멀어졌다. 머리는 차갑고 심장은 뜨거웠지만, 그 머리와 심장의 소리를 듣지 않았다. 아이가 생기고, 성장하고, 나이가 들어갔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나의 삶은 나를 위해 산 것 같기도 하고, 남을 위해 산 것 같기도 하고, 가족을 위해 산 것 같기도 하고, 이도저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예전 같으면 뚜렷한 경계선을 그으며 참과 거짓,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적과 아를 구별하며 살았던 같은데, 점점 그 경계선이 희미해진다. 이제는 내가 나의 적인 것 같기도 하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삶이 계속되었다.      

2.

가파도로 내려와 매일 저녁 하늘을 본다.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쏟아지는 별들을 본다. 아침에 일어나 뜨는 해를, 그 붉다가 황금색을 변하는 하늘을 본다. 하늘을 닮은 바다는 하늘이 열기를 품었다가 내뿜어 낸다. 그리고 고요하고 잔잔하다. 아침에  푸른 하늘을 보며, 늘 변하지만 그래서 변하지 않는 하늘을 믿게 된다. 그리고 하늘을 믿는 것처럼, 땅을, 바다를 믿게 된다. 스스로 존재하지만 결코 스스로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온갖 것들을 믿게 된다.

그리고 나를, 동물과 식물을, 동네 주민을, 인류를 믿게 된다. 우리는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그래서 같이 살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 산다고 하지만, 남을 위하지 않을 수 없는, 같이 살아가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드높고 귀한 나를 위한 삶이라는 것을 믿게 된다. 그렇게 하늘이 영원한 것처럼, 우리도 영원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게 된다.


악이 창궐하는 시대에도, 선을 꿈꾸며 살았던 인류처럼, 나도 그 일원이 되어 살아가야겠구나 하는 든든한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하루가 소모되지 않고, 이어져 영원에 가닿기를 소망하게 된다. 우리는 가장 높고 가장 낮고, 가장 넓고 가장 좁고, 가장 크고 가장 작은 존재임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기도하며 살게 된다.

그런 생각에 도달할 때쯤,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장년 시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에까지 이어진 것임을 희미하게 느끼게 된다. 사라진 것이 하나도 없듯이, 끊어진 것도 하나도 없다.     

 

3.

노자도 아마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자연 속에서 순수하게 자연을 닮아가며 살다가, 청년이 되어 이깟 세상 뒤집어져라 망해버려라 그래서 멋진 세상을 만들어보자 노력하다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왕 밑으로 들어갔겠는가), 내가 한 노력도 결국은 남을 해칠 수도 있겠구나 흠칫 놀라게 되고,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서 욕심을 내려놓게 되지 않았을까. (그의 은퇴는 비겁이 아니라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한 세월을 잊고 남은 세월을 하늘처럼 땅처럼 살아가지 않았을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앞서는 길임을,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길임을 알고 그 길을 걸어간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이렇게 쓸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늘과 땅은 영원해요.

자기만을 위해 살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영원한 거예요.     

성인도 마찬가지지요.

자신을 앞세우지 않으니까 앞서게 되고,

자신을 잊으니까 자신이 있게 되는 거예요.

자신의 욕심을 없애는 것

그것이 자신을 완성하는 하는 거지요. (7장)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是以聖人 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    

       

The Tao is infinite, eternal.

Why is it eternal?

It was never born;

thus it can never die.

Why is it infinite?

It has no desires for itself;

thus it is present for all beings.     

The Master stays behind;

that is why she is ahead.

She is detached from all things;

that is why she is one with them.

Because she has let go of herself,

she is perfectly fulfil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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