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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01. 2024

3. 여인

도덕경 6장

1.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남성에게 인생의 여인을 꼽으라면 어릴 시절의 엄마와 젊은 시절의 연인과 장성하여 결혼하게 되면 아내가 될 것이다. 연인과 아내가 겹치는 축복(?)을 누리게 되면 여인은 둘로 줄어든다. 요즘의 젊은이들 중에서는 연인도 아내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물론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고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은 훨씬 복잡한 방정식으로 여인들이 꼽히리라.

서정주는 ‘자화상’에서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것 팔 할이 바람이다"라고 과장하지만, 정작 남자를 키운 것 팔 할 이상이 여인이었다. 여자를 종처럼 부려먹을 수 있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태어나 엄마란 이름으로, 아내란 이름으로, 여동생이란 이름으로 함부로, 일부러, 무의식적으로 여인들을 착취하며 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몸서리쳐지는 일이었다.

남성은 바깥에서 돈을 벌고, 여성은 안에서 살림을 한다는 역할 분담도 말이 안 되고, 그렇게 가족과 사회 안에서 무 자르듯 일이 분담되지도 않았다. 자잘하고 하찮고 귀찮고 성가신 일들을 여인들에게 떠넘기고 잘도 살아왔다. 집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이 지긋지긋한 봉건적 구조와 역할은 변경되지 않고, 더욱 유연하게 교묘하게 변형되어 유지되고 있다.

페미니즘 공부 덕분에 섹스와 젠더를 구분할 수 있게 되고, 이성애만을 정상으로 취급하지 않게 되었다. 성정체성, 성적 취향, 성 역할은 일치하지 않았고, 일치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특정한 사랑의 방식만을 특권화하기에는 자연은 너무도 복잡하고 유연하다. 개개인의 피가 고유하듯이, 사람마다의 사랑은 모두 고유하다. 그러니 수십억 명의 인간에게는 수십억 개의 사랑이 있지 않을까?     


2.

각설하고. 가파도에 내려와 생활하다 보니 여인들을 더욱 많이 만나게 된다. 제주도 안의 가파도라는 특성도 있고, 가파도에서 가장 오래되고 안정적인 직업은 해녀였다. 바람과 파도와 더불어 물질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이 이 섬의 주인이었다. 그럼에도 희한하게 가부장제는 존속하여 남녀차별이 무의식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남자들은 대접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여자들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본토나 외지로 나가고, 나이 먹은 사람들만이 남아서 세월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고령화되어 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되, 젊은이들을 유입할 수 있는 생활터전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가파도는 이렇게 소멸되고 마는 것일까? 영등할망이 새해마다 생명의 씨앗을 뿌려주듯 가파도에서 새로운 생명의 씨앗들이 성장할 수 있을까? 낙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바닷물이 마르지 않듯, 섬에서 자생하는 풀들이 해마다 푸른색으로 옷을 갈아입듯, 온갖 꽃들이 생명력을 자랑하듯, 처마밑에 제비가 지저귀고, 수풀 사이로 참새가 날아다니고, 바위에서 쉬고 있던 갈매기와 가마우지가 날아오르듯, 골목마다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리듯, 우리의 인생도 마르지 않고 계속될 수 있을까? 그렇기를 소망한다.    

3.

노자는 전쟁과 무질서로 점차로 소멸해 가는 주나라의 운명을 간파했다. 더 이상 주나라의 사관으로 왕실을 지키는 것은 쓸모없는 일임을 알았다. 무너지는 것은 무너지리라. 대신 무너지지 않는 세상으로 가보자. 그렇게 함곡관을 거쳐 서쪽으로 향했다. 관문을 통과하여 어디로 갔는지, 돌아왔는지, 다른 곳에 정착했는지, 떠돌고 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함곡관을 통과할 때 관문지기 윤희가 가로막으며 노자에게 지혜를 남겨달라 부탁하여, 5천여 글자의 문장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문장들을 묶어 <도>와 <덕> 두 권의 책으로 묶었고, 그것이 우리에게 전해져 <도덕경>이 되었다. 그중 여섯 번째 시가 ‘신비한 여인[玄牝]’을 언급하고 있다. 신비한 여인은 자연의 생명력이고, 구체적 언어로는 계곡의 물[谷神]이다. 노자는 물을 신처럼 여겼다. 우주의 원리[道]에 가장 가까운 것도 물이었다. 신비한 여인은 계곡의 신이다. 그리고 그 여인의 문에서 흐르는 물은 언제나 있는 듯,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다. 노자는 여성의 힘을 믿었던 것일까? 아니면 자연을 원초적 생명인 여성에 비유한 것인가?          

계곡의 물은 마르지 않아요.

신비한 여인이라 말할 수 있지요,

신비한 여인의 문은 하늘과 땅의 근원이라 말할 수 있고요,

흐르고 흘러도 언제나 있는 것 같아요.

쓰고 써도 마르지 않아요.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The Tao is called the Great Mother:

empty yet inexhaustible,

it gives birth to infinite worlds.     

It is always present within you.

You can use it any way you w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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