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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31. 2024

2. 바람

도덕경 5장

돌, 바람, 여자. 제주도를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제주도도 제주도지만, 가파도야말로 바람의 섬이다. 제주도는 바람이 불어도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만, 가파도는 바람이 불면 일상생활이 급변한다. 풍랑주의보가 떨어지면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배가 뜨지 않고, 배가 뜨지 않으면 오도 가도 못하는 고립된 섬이 된다. 관광객 한 명 없이 조용한 섬으로 변한다. 가게는 문을 열지 않고, 동네주민들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날씨도 천차만별이다. 남서풍이 불면 배가 뒤집어진다 하여 조업을 나가던 고깃배도 멈춘다. 참, 고약한 바람이다.

바람은 파도를 움직여 바다에 떠다니던 해양쓰레기를 해안가에 부려놓기도 한다. 해양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버리지도 않은 동네주민들이 동원된다. 버리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 해안가를 걷던 관광객들은 이런 속사정도 모르고 해안가에 쌓은 쓰레기를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이럴 때는 바람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날, 길을 걷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참으로 시원하여 더위를 가시게 한다. 바람은 온갖 곡식과 해양생물을 자라게 하는 역할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봄에 씨를 뿌리는 바람을 영등할망이라 하여 신처럼 섬겼다. 바람과 함께 살아가는 제주도의 풍습이다. 바람을 원망하는 사람에게 바람은 고약한 것이지만, 바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바람은 고마운 존재다. 모든 자연현상이 그렇겠지만, 자연은 편애하지 않는다. 자연에는 인간의 윤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하늘은 어질다고 말한 유학자는 자연의 밝은 면만을 본 것이다. 하늘에 인격을 부여하고 자신의 이념에 맞춰 재단(裁斷)하는 것을 노자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하늘과 땅은 인격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이 원한다고 인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노자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말했다. 하늘이 따로 인간만 사랑하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다. 편애하지 않으니, 어떤 존재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하찮게 여겨진다 생각할지 모른다. "나만 사랑해 줘"라고 아무리 외쳐도 하늘은 대꾸하지 않는다. 하늘은 존재 그대로 존재하게 한다. 그저 필요할 때 쓰이고, 필요 없어지면 버리는 ‘추구(芻狗)’처럼 대한다.


슬픈가? 하나도 슬퍼하지 말길. 사라지는 존재가 있어야 생겨나는 존재가 있고. 헤어짐이 있어야 만남이 있듯이. 우주의 모든 만물은 잠시 이 세상에 이 모양으로 존재했다가 저 모양으로 변화하는 것이니. 그렇게 생각해 보면,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죽음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모양으로 바뀌는 것일 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자. 나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자. 나 역시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이니.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말자.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떠다는 존재처럼, 자유롭게 바람을 타고 살아가자. 모든 생명의 고통과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나의 고통과 기쁨도 그렇다. 아프면 아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만나면 만나는 대로, 헤어지면 헤어지는 대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말은 그만하자.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우주는 편애하지 않아요.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겨요.

성인도 편애하지 않아요.

사람들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기지요.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의 바람통과 같아요.

비어있지만 다함이 없고

움직이면서 생명을 내놓지요.     

말이 많으면 궁해지니까

적절히 이쯤에서 그만둘래요. (5장)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天地之間, 其猶槖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The Tao doesn't take sides;

it gives birth to both good and evil.

The Master doesn't take sides;

she welcomes both saints and sinners.     

The Tao is like a bellows:

it is empty yet infinitely capable.

The more you use it, the more it produces;

the more you talk of it, the less you understand.     

Hold on to the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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