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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27. 2024

1. 돌

도덕경 26장

가파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돌이다. 돌로 벽을 쌓고, 집을 짓고, 담을 만들고, 제단을 쌓고, 무덤을 장식했다. 바닷가에 가면 모래는 없고 돌만 있다. 침식과 풍화작용을 덜 받은 젊은 섬이라는 이야기다. 가파도민은 해안가에 있는 돌들을 표지석으로 삼아 장소를 이동했다. 고냉이돌, 큰 왕돌, 까마귀돌, 어망아방돌 ……. 색깔과 모양에 따라 이름을 짓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가장 오래된 토템신앙이다.

돌이 신이 되고 표지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변함없음에 있다. 항상 그곳에 그대로 있기에 돌은 믿음의 대상이 되었다. 존재 그 자체가 의미로 전환하는 몇 안 되는 사례다. 돌은 기도처이고 제단이다. 듬직하고 널찍하고 단단하고 안전하다. 마치 괜찮은 어른처럼. 지도자는 마치 이러해야 한다는 것처럼.


돌은 말이 없다. 말없이 들어주는 존재는 얼마나 귀한가. 도시에 살다가 가파도로 내려오니 가장 큰 변화가 소리다. 이곳도 관광지라 배편이 있을 때는 붐비고 시끌벅적하지만 배가 끊기면 갑작스럽게 적막이 깔린다. 가끔은 무인도에 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해질녘 해안가를 산책하다 보면 사람 한 명 만나기 드물다. 사람 소리는 사라지고, 온전히 자연이 내는 소리만 들린다. 소리는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말 없는 소리가 들린다. 돌은 그 소리를 받고 안고 흐르게 한다. 돌은 자신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


노자는 어렸을 적, 분명 자연 가까이에 살았던 것 같다. 그의 시 전체에 흐르는 정서는 자연에 대한 예찬이다. 주나라 왕실에서 문서에 쌓여 살았으나, 노자가 가슴에 품은 것은 글자와 말이 아니라 자연이었다. 그는 자연을 닮은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불렀다. 인간 세상이 자연을 닮기를 기원했다. 말 많고 바삐 움직이고 졸속행정으로 자연을 훼손하고 인간의 삶을 괴롭히는 것을 경계했다. 무릇 지도자라면 화려하지 않고 보이지 않고 고요하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노자는 이렇게 쓴다.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뿌리이고

고요한 것은 조급한 것의 근원이지요     

이처럼 성인은 종일 다닐지라도

수레를 떠나지 않고

화려한 모습이 보일지라도

고요한 곳에 초연하게 머물지요

큰 나라의 주인이 어찌 세상을 가볍게 대하겠어요     

가벼우면 근본을 잃게 되고

조급하면 자리를 잃게 되지요 (26장)    

 

重爲輕根 靜爲躁君 是以君子終日行 不離輜重

雖有榮觀 燕處超然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輕則失本 躁則失君


스티븐 미첼은 이렇게 영어로 옮겼다.


The heavy is the root of the light.

The unmoved is the source of all movement.     

Thus the Master travels all day

without leaving home.

However splendid the views,

she stays serenely in herself.     

Why should the lord of the country

flit about like a fool?

If you let yourself be blown to and fro,

you lose touch with your root.

If you let restlessness move you,

you lose touch with who you are.         

 

가파도에 내려오니 말이 줄었다. 산책하는 시간이 늘었다. 자연에 더 가까이 있다. 돌을 보고 돌에 기대고 돌을 생각한다. 그 깊음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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