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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Apr 25. 2024

들어가며 : 가파도에서 노자를 읽다

노자 도덕경(80장)

독서도 때와 장소에 따라 감흥이 다르듯, 글쓰기도 시기와 처지에 따라 색깔이 달라집니다. 젊은 시절 도시에서 쓰는 글쓰기와 환갑줄에 시골에서 쓰는 글쓰기가 같을 리 없습니다. 환갑이 다되어 가파도로 홀로 내려왔습니다. 만권의 책을 도시에 남겨두고, 50권의 책을 간추려 내려왔습니다. 대부분 노자, 열자, 장자에 대한 책이거나, 그와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는 책들입니다.


쿠팡으로 조립식 책장과 탁자를 시켜 작은방에 조립해 놓고 책들을 꽂아두니 제법 공부방 같습니다. 나 한 명 들어가면 꽉 차는 감옥의 독방보다 작은 사이즈의 공간이지만,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밥 끓여 먹을 작은 주방도 있고, 피곤하고 졸릴 때 대자로 누울 수 있는 큰방도 있습니다. 바깥 마당도 있어 고양이 두 마리가 상주하고, 예닐곱 마리가 방문하여 식사를 합니다. 동틀녘 마당에 나가면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습니다. 마당 앞에는 작은 텃밭도 있는데, 지금은 잡초가 무성해서 밀림 같은 분위기입니다만, 마음먹고 정리하면 상추 심고, 고추 심고, 파도 심을 수 있습니다. 불평을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장점을 꼽자면 그 역시 한도 끝도 없지요. 한반도 끝 큰 섬 건너 작은 섬에서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면 충분히 행복한 공간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가파도는 인구 200여 명, 섬둘레 4킬로미터 남짓, 위에서 보면 가오리 같이 생긴 작은 섬입니다. 고양시에 살 때 호수공원을 돌았는데, 딱 호수공원만한 섬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고, 자전거로는 20분도 안 걸립니다. 면적은 작지만 나에게는 한없이 큰 섬입니다. 바다가 연결되어 있기에. 섬과 섬은 끊어진 것이 아니라 바다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비단 섬만이겠습니까? 우리를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서로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도시에 살면서도 답답했는데, 가파도로 내려오면서 그 답답함이 가라앉았습니다. 차분히 독서도 하고 글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파도로 내려온 지 100일쯤 지나자 막혔던 원고가 뚫리며 <장자를 달린다>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부제가 ‘가파도에서 읽는 장자’입니다. 이번에는 그다음 후속 편으로 <가파도에서 읽는 노자>를 연재하려 합니다. 어쩌면 가파도야말로 노자를 읽고 쓰기에 가장 적합한 곳일 수도 있습니다. 노자는 그의 글 마지막 부분 80편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라를 작게 하고 인구를 줄이십시오!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더라도 쓰지 마십시오.

백성들이 죽음을 중히 여겨 멀리 이사 가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타지 말고,

비록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내보이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간결하게 의사소통하도록 하십시오.

음식은 맛있게,

옷은 아름답게,

집은 편안하게,

풍속은 즐겁게 하십시오.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지만,

샤람들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는 일이 없습니다.


소국과민(小國寡民)의 땅, 사람을 죽이는 무기도 없고 이사 가는 사람도 거의 없는 곳, 간결하게 말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곳, 그곳이 바로 가파도입니다. 배가 끊기면 왕래도 끊기는 땅! 노자(老子)가 왔다면 바로 이곳이야 했을지도 모를 섬입니다.

바로 이 가파도에서 노자를 다시 읽습니다. 노자 전편을 읽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파도와 노자가 겹쳐지는 곳, ‘가파도 × 노자’를 읽을 수 있는 27편을 골랐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며’와 ‘마치며’를 합치면 29개의 원고가 됩니다. 브런치북이 제한하는 30편에 맞춤합니다. 목차를 알려드릴게요.

      

1. 돌(26장)

2. 바람(5장)

3. 여자(6장)

4. 하늘(7장)

5. 노인(20장)

6. 풍랑(23장)

7. 재난(31장)

8. 낮음(39장)

9. 고양이(43장)

10. 몸(44장)

11. 만족(46장)

12. 이장(49장)

13. 무덤(50장)

14. 어망(52장)

15. 아이(55장)

16. 먼지(56장)

17. 물고기(60장)

18. 청보리(59장)

19. 걷기(64장)

20. 잔꾀(65장)

21. 질병(71장)

22. 싸움(73장)

23. 세금(75장)

24. 나무(76장)

25. 물(78장)

26. 빚(79장)

27. 나눔(81장)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구독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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