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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06. 2024

8. 하나

도덕경 39장

1.

제2의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삶을 봄여름가을겨울처럼 4마디로 나눈다면, 소년, 청년, 중년, 노년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고, 소년과 청년 시대를 제1의 인생이라 말한다면, 중년과 노년은 제2의 인생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을 넉넉 잡아 100살로 잡는다면 50까지가 제1의 인생이라면, 50 이후가 제2의 인생이다.


제2의 인생의 특징이라면, 직장인은 은퇴를 준비하고, 가족은 구성원들이 독립하고, 새로운 생계수단을 찾아야 하고, 건강을 챙기고, 시간적 여유를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마디로 성장이 아닌 성숙을 도모해야 할 때다.


동양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나아감[進]의 시기가 아니라 돌아감[歸]의 시기이다. 일찍이 신용복 선생은 나아감의 철학에 해당하는 것이 유가(儒家)와 법가(法家)이고, 돌아감의 철학에 해당하는 것을 도가(道家)와 불가(佛家)라 하였다. 젊은 시절에는 <논어>, <맹자>, <한비자>를 읽고, 나이 들면 <도덕경>, <장자>를 읽는 것이 좋다. 특히 <도덕경>은 짧고 압축적인 시로 구성되어 있어 간단히 읽고 깊게 명상하기에 딱이다.      

2.

나이가 들수록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없다. 책을 읽어도 세부적인 사항은 기억이 나지 않고, 핵심만 간신히 기억해 낸다. 전화번호도 몇 개밖에 기억 못 하고, 노래가사도, 심지어 사람이름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다.) 지식은 쌓이고, 지혜는 줄인다는 말을 노자가 했는데, 아마 노자도 그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삶의 세부사항이 아니라, 삶의 핵심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월든>을 쓴 쏘로우는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삶을 줄이라 했는데, 노자는 한 술 더 뜬다. ‘하나를 얻으라’고 한다.


그 ‘하나’가 무엇일까? 그것을 얻으면 어떻게 되나? 하나를 얻으면 하늘은 맑아지고, 땅은 평안해지고, 정신은 거룩해지고, 골짜기는 가득 차고, 만물은 살게 되고, 귀한자는 높아진다. 참으로 엄청난 효용이 아닐 수 없다. 그 ‘하나’를 잃으면? 하늘은 갈라지고, 땅은 흔들리고, 정신은 쉬지 못하고, 골짜기는 마르고, 만물은 생명을 잃고, 높은 사람은 넘어진다. 한마디로 총체적 재난 상태가 된다.


‘하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생명을 잃게 된다. 그런데 그 ‘하나’가 뭘까? 이어 읽어보니 그 하나는 ‘천함’과 ‘낮음’이다. 귀함과 높음이 아니다. 왜 하필 천함이고 낮음인가? 그것이 존재의 근본이고 바탕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근본이기를 알기에 옛왕들은 자신을 ‘고인(孤人)’ 또는 ‘과인(寡人)’이라 부른 것이다. 외로운 자, 부족한 자란 뜻이다.


아, 넘쳐도 부족한 듯 살라는 것이구나, 높아도 낮은 듯 살라는 것이구나. 귀해도 천한 듯 살라는 것이구나. 더 낮아지면서, 더 천해지면서 살라는 것이로구나. 그래서 아래로 아래로 근본으로 근본으로 내려가면서 살라는 것이로구나. 기독교에서는 신이 인간의 육체를 입었듯이, 노자는 낮은 자가 볼품없는 자가 되라고 말하고 있다.      


3.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파도로 내려왔는데, 그래서 가파도 주민들도 하지 않는(?) 매표원이 되어 살아가는데, 노자는 나에게 말한다. 보석처럼 살지 마라. 돌처럼 살아라. 낮아지고 낮아져서 볼품없어질 때까지! 그러면 그 하나를 얻으리라. 그 하나를 얻으면 정신은 거룩해지고, 육체는 살게 되리라. 이 하나를 붙잡고 살아가야겠다, 다짐하는 날.           

옛날부터 ‘하나를 얻으라’는 말이 있어요

하늘이 하나를 얻으면 맑아지고

땅이 하나를 얻으면 편안해지고

정신이 하나를 얻으면 거룩해지고

골짜기가 하나를 얻으면 가득 차고

만물이 하나를 얻으면 살게 되고

왕과 귀족이 하나를 얻으면 높아져요

이 모두가 하나를 얻었기 때문이지요.     


하늘이 맑음을 잃으면 갈라지고

땅이 편안함을 잃으면 흔들리고

정신이 거룩함을 잃으면 쉬지 못하고

골짜기가 가득참을 잃으면 마르고

만물이 생명을 잃으면 없어지고

높은 분들이 높음을 잃으면 넘어지지요.     


그래서 천함이 귀함의 근본이고

낮은 것이 높은 것의 바탕이지요

높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고아, 외톨이, 부족한 자라고 말하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천함으로 근본을 삼는 것이지요.  

   

아닌가요?

재산이 넘칠 만큼 많더라도 없는 듯 사세요

보석처럼 빛나려 하지 말고 돌처럼 볼품없이 사세요. (39장)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 以爲天下貞 其致之一也

天無以淸 將恐裂 地無以寧 將恐發 神無以靈 將恐歇 谷無以盈 將恐竭 萬物無以生 將恐滅 侯王無以貞而貴高 將恐蹶

故貴以賤爲本 高以下爲基 是以侯王自稱孤寡不穀 此其以賤爲本耶

非乎 故致數輿無輿 不欲碌碌如玉 落落如石

 

In harmony with the Tao,

the sky is clear and spacious,

the earth is solid and full,

all creature flourish together,

content with the way they are,

endlessly repeating themselves,

endlessly renewed.     

When man interferes with the Tao,

the sky becomes filthy,

the earth becomes depleted,

the equilibrium crumbles,

creatures become extinct.     

The Master views the parts with compassion,

because he understands the whole.

His constant practice is humility.

He doesn't glitter like a jewel

but lets himself be shaped by the Tao,

as rugged and common as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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