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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08. 2024

10. 재산

도덕경 44장

1.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집? 땅? 차? 적어도 이 세 가지는 가지고 있어야 능력있는 인간이라는데, 나는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 소유하고 있지 않다. 가파도로 내려와 연세 130만 원으로 집을 얻었다. 가파도에는 전세나 월세가 없다. 부동산 중계소도 없다. 그저 알음알음으로 간신히 달팽이집을 얻어 몸을 부치고 있다. 땅은 송곳 꽂을 곳도 없다. 땅을 소유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인간만이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한다. 땅은 독점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독점적 소유를 주장하는 무뢰한이 인간이다. 인간은 지구상에 잠시 등장했다 사라질 존재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땅은 빌린 것이다. 차는 내려오면서 폐차시켰다. 차가 없으니 불편하긴 하다. 하지만 불편은 모든 존재의 기본값이다. 감당하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집, 땅, 차가 없어도 사람구실하며 살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름? 명예? 지위? 이름은 나에게 붙여준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이름을 남겨 무엇하겠는가. 비석에 새겨진 이름들은 세월의 무상함을 나타낼 뿐이다. 이름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리라. 명예나 지위 역시 나의 것이 아니다. 잠시 나에게 맡겼다가 바닷가의 모래성이 무너지듯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가진 것 없어도 사는데 아무 문제없다.     


결국 생각해 보니 이 몸뚱이 하나 갖고 태어났을 뿐이다. 나머지는 이 몸뚱이가 살아가면서 붙였다가 떼는 태그와 같은 것이다. 집도 땅도 차도 이름도 명예도 지위도 이 몸뚱이 하나 살아가면서 잠시 빌린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잠시 빌리는 것에 큰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겠다.

아니지, 좀 더 생각해 보면 이 몸뚱이도 빌린 것이다. 이 몸뚱이도 원래는 없었다가 생겨난 것이다. 생겨난 것은 곧 사라지게 될 운명이다. 그러니 이 몸뚱이도 나의 것이 아니다. 몸뚱이가 나의 것이 아닌데, 몸뚱이가 만들어 내는 감정, 생각들이 나의 것일 리가 없다. 생각을 정리한 관념이나 사상 역시 마찬가지. ‘나’라는 관념도 마찬가지. 어허, 그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에 내 것이라 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왜 이리 애쓰고 있는가? 존재가 불안해서? 존재의 불안 역시 외부에서 나에게 덮어씌워진 것 아닌가? 불안해져야 불안을 떨치고자 애써 살아가게 되니까, 나의 불안을 이용하는 자들이 나에게 걸어놓은 주문은 아닌가.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 생각의 결론이 날까? 결론이라는 것이 있기는 할까? 생각의 늪이 나를 질식시키지는 않을까? 나는 생의 심연을 바라볼 수 있는 고래의 붉은 눈이 있을까? 고래도 아닌 것이 바닷속 깊이 내려가려 했다가 터져버리는 것 아닐까?  (......)

  

2.

오늘 가파도에 비가 내린다. 사위가 조용하다. 바다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작게 일었다가 사라지는 동심원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날씨가 철학을 만든다.”고 서동욱은 말했다. 비가 오는 날은, 몸도 따라 비가 온다. 생각에도 비가 내린다. 하염없이 생각에 잠긴다. 빗방울은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작동한다. 밭에 내리면 풀들의 갈등을 덜어준다. 벽을 때리는 빗방울은 스며들었다가 곰팡이로 살아난다. 가파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벽지 위로 피어나는 곰팡이들이다. 아무리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다. 생각에도 곰팡이가 필 때가 있다. 번식력은 뛰어난데, 쓸모가 없다. (하지만 쓸모없음의 쓸모를 만들어 내는 것이 철학의 본분 아닌가?)


이런 생각들은 멈추는 게 좋다. (아니야 멈추지 말자.) 멈추지 않으면 하루를 망치게 된다. (멈추지 않으면 철학적 하루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멈춰야지 생각한다고 생각이 멈춰지는 것은 아니다. 생각은 물음으로 이어지고, 물음은 다시 물음을 낳는다. 묻는다는 것은 흔들린다는 것이다. 흔들림 역시 존재의 존재방식이다. 흔들리면서 가는 것이다.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다.     


3.

우리는 위대한 성인들은 존재의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인들의 말은 흔들리지 않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그만 생각 해봐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노자라고 처음부터 존재와 변화의 이치를 깨달았겠는가? 아니 흔들리지 않고 존재와 변화의 이치를 깨달을 수가 있는가? 노자도 평생을 흔들리며 살았을 것이다. 흔들리며 살았기에 말년에 담담히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도덕경> 44장은 바로 그 흔들림의 흔적이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흔들림. 노자의 시 중에서 흔치 않게 질문이 많은 장이다. 남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지만, 결국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명성을 얻는 것, 재물을 쌓는 것, 지위를 얻는 것, 애정을 쏟고 집착하는 것, 결국은 자신을 망치고 괴롭혀 왔던 것을 자문자답한다. 노자가 도달한 결론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멈추자는 것이다. 더 추구했다가는 망신당하고 제명에 못 죽겠다는 것이다.  


멈출 줄 아는 것[知止]과 만족할 줄 아는 것[知足]은 한 쌍의 태도다. ‘못 먹어도 고’가 아니라 못 먹을 줄 알고 스톱이다. 알아야 멈춤이 가능하다. 모르면 있는 것마저 빼앗긴다. 독박 쓴다. 재산도, 명예도, 지위도, 권력도, 사랑도, 건강도, 생명도 결국은 그 한 끗 차이다.    

 

이름과 몸 중에서 어느 것이 가깝나요?

몸과 재산 중에서 어느 것이 귀하지요?

얻음과 잃음 중에서 어느 것이 마음을 끄나요?     

예로부터 지나친 애정은 반드시 큰 비용이 들고

지나친 쌓아둠은 큰 망함을 초래한다고 해요

만족함을 알아야 망신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지요

그러면 오래오래 살 수 있어요 (44장)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Fame or integrity: which is more important?

Money or happiness: which is more valuable?

Success of failure: which is more destructive?     

If you look to others for fulfillment,

you will never truly be fulfilled.

If your happiness depends on money,

you will never be happy with yourself.     

Be content with what you have;

rejoice in the way things are.

When you realize there is nothing lacking,

the whole world belongs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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