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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09. 2024

11. 만족

도덕경 46장

1.

<종의 기원>으로 진화론을 창시한 찰스 다윈

다윈의 진화론을 공부하다 보면, 세상을 의외로 간단한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생존과 번식, 이 두 코드로 세상을 읽는다. 몸을 만들고 꾸미고, 능력을 키우고 발휘하고, 돈을 모으고 쓰고, 지식을 쌓고 드러내고, 심지어 선행을 쌓고 신망을 얻는 것 모두 생물학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결과다. 심지어는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하는 것 또한 같은 코드로 해석이 가능하다. 리더가 되려면 용감하고 정의롭고 약자를 보호하고 자원을 잘 배분해야 한다. 자신의 힘만 믿고 약탈하고 살육하고 억압하면 개체번식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결국 종번식을 방해하는 것임으로 저항을 면치 못하는 것 역시 종의 생존을 위한 집단적 생존전략에 따른 결과다.

인간과 같은 무리동물은 개체의 생존만큼이나 집단적 생존을 위한 행동양식을 키워왔다. 위계질서를 만들고 이 위계질서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들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계급(관료, 군인, 교육자, 사제)을 만들어 그들의 생존과 번식을 보장해 왔다. 인간을 생물학적 관점으로 보자면, 집단생활에 필요한 위계질서의 어느 한 지점에 위치하며 자신의 일을 잘하는 것으로 생존을 보장받았다.

문제는 이 질서가 강화될수록 개체의 생존은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아래 계층에 속해 있는 인간은 소모품처럼 파괴될 수 있다. 열심히 일할수록 굶주리고, 용감할수록 일찍 죽는다. 자신이 노예처럼 살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자신의 삶을 운명이라 여기며 그러한 삶을 대물림한다. 그것은 고대사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사피엔스 종은 생물학적으로 진화가 멈췄기 때문이다.      


2.

피로사회, 성과사회, 자기가 자신을 착취하는 현대사회를 분석한 한병철 철학자

오늘날 정보사회에 살아가는 인간은 자유롭다는 환상 아래 자신을 스스로 착취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신이 자신을 착취하니 저항은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자신이 소진될 때까지 일하다가 소모되고 만다. 자원이 없는 자들은 스스로의 자원을 약탈하는 방식으로 생존하고, 자원이 풍부한 자는 남의 자원을 약탈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자원을 늘린다. 그것의 완성태가 바로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사회는 인류가 생산해 낸 생산도구(기계로부터 AI에 이르기까지)를 통해 축적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하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그 결과 빈익빈부익부는 지속 강화된다. 생산도구의 발전은 노동시간의 감축으로 귀결될 수 있지만, 자본주의는 노동시간 감축으로 인류에게 그 혜택을 배분하지 않고, 해고와 고용축소, 노동강화를 통해 더욱 비참한 사회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러한 비참함을 누가 더 보이지 않게 세련되게 생산하느냐로 경쟁한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는 인류 복지에 전혀 관심이 없다. 오너와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나머지 비용은 최소한으로 줄여 비용을 절감하는 것을 합리적 경영이라 생각한다. 신분으로서의 계급구조는 사라져 가고 있지만, 자원배분을 둘러싼 계층구조는 한층 강화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커녕 미꾸라지조차 생존불가능한 지경으로 생존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지역경제는 침체되고, 예산은 삭감되고, 분배는 깜깜하다. 한 나라나 지역의 지도자가 할 일은 자원을 확보하고 잘 분배하는 정책을 펴야 하지만, 그런 분배가 힘들다면 약탈이나 착취는 하지 않아야 한다. 약탈이나 착취는 피해자의 일상적인 삶을 파괴하고 삶을 피폐시키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만 피를 흘리는 것이 아니다. 삶이 전쟁이라면 삶의 모습은 죽음을 닮아간다.   

    

3.

가파도로 내려와 나는 시급알바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자본주의 구조로 치면 최하층에 속하는 삶이다. 여기서 더 열심히 일해야 계층 사다리를 타고 진급하고 출세할 수 있다지만, 나는 그러한 코스를 타지 않으려 한다. 그러한 코스를 타려면 자원이 없는 나는 나를 더 착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생존가능한 만큼만 일하고 나머지는 생존과 관계가 없는 삶을 모색한다. 그러려면 나의 이 보잘것없는 삶에 만족하고, 경제적 성과 이외에 만족할 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일할 권리가 아니라, 일하지 않을 권리가 나에게는 있다.  


4.

춘추전국시대, 노자는 전쟁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는 전쟁이 없는 사회를 꿈꾸었다. 전쟁은 모든 가용자원을 총동원하여 죽음의 현장으로 몰고 갔기 때문에, 생명체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다. 그 죽음은 인마(人馬)를 가리지 않았다. 새끼 밴 말조차 동원되었다고 노자는 증언한다. 그러면 왜 이러한 전쟁은 벌어지는가? 그것은 지도자가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의 자원을 풍부하게 하는 방식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남의 자원을 침략하여 약탈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 침략과 약탈은 무한경쟁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멈추지 않았다. 전쟁은 만족을 모른다.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갖고자 한다. 그 약탈적 생존전략은 인간이 선택하는 방법 중 가장 위험하고 위태로운 것이었다. 전쟁은 가속화되고 심화되었다. 멈추지 않았다. 평화는 멀어져 갔다. 노자는 눈물을 흘리며 이 사실을 기록한다.    


세상에 도가 있으면 (전쟁이 사라져)

수말의 똥으로도 비옥한 거름을 만들고

세상에 도가 없으면 (전쟁이 나)

암말의 새끼도 제대로 돌볼 수 없어요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고요

만족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화는 없지요

더 얻고자 하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은 없어요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함을 알아야

만족함이 영원하지요. (46장)


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罪莫大於可欲 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故知足之足 常足矣

         

When a country is in harmony with the Tao,

the factories make trucks and tractors.

When a country goes counter to the Tao,

warheads are stockpiled outside the cities.     

There is no greater illusion than fear,

no greater wrong than preparing to defend yourself,

no greater misfortune than having an enemy.

Whoever can see through all fear

will always be s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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