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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12. 2024

13. 죽음

도덕경 50장

1.

삶과 죽음의 자리가 따로 있는가? 죽음은 삶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난 10대 후반에 성홍열로 고생했다. (<작은 아씨들>의 착한 소녀 베스도 성홍열로 꽤나 고생했다.) 죽을 것만 같았다. 하숙집을 전전할 때 맹장염에 걸려 혼자서 끙끙 앓다가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 작은 아버지에게 연락해서 수술하고 겨우 살아났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맹장이 터질 위기였다 한다. 40대 초반에 꿈속에서 저승사자가 나타났다. “오늘 죽는 줄도 모르고 잘만 자고 있구나”라는 저승사자의 말에 화들짝 깨어나 어찌할 바 모르다가 ‘죽으면 죽으리라’ 생각하고 그냥 다시 잠을 청했다. 그대로 죽어도 괜찮다는 판단을 하고 나서였다. 물론 죽지 않았다. 그 이후의 삶을 덤처럼 여겼다. 무서울 게 없었다. 죽는 게 두렵지 않았다.   

  

<작은 아씨들>의 세째딸 베스. 피아노 치기를 좋아하고 이웃을 도와주는 것을 즐거워한다. 성홍열에 걸려 죽어라 고생한다.

나에게 죽음은 그리 멀지 않은 사건이었다. 고2 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경험했다. (아버지는 심장판막증으로 꽤나 고생하시다가, 연탄가스를 맡고 돌아가셨다.) 아버지 대의 4형제는 모두 환갑도 도달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단명도 유전이라면 나도 일찍 죽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환갑이 지나서도 이렇게 살고 있다.) 꽤나 친한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고 넋을 놓은 적도 있고, 엄청 좋아하는 선배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망연자실한 적도 있었다. 그 어떤 죽음도 친숙하지는 않았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2.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자주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지혜로운(?) 죽음을 탐색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철학적이었고, 예수의 죽음은 장엄했으며, 부처의 죽음은 명상적이었고, 공자의 죽음은 자연스러웠다. 가장 마음에 든 죽음은 장자였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인생의 깊은 철학을 담고 있었다. 장자는 우주를 자신의 무덤으로 삼기를 바랐다. 요즘 말로 하면 숲 속에 버려지는 풍장을 바랐다.

나는 집에서 태어났지만 길에서 죽기를 바랐다. 늙으면 모든 것을 버리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넝마를 줍다가 동네가 보이면 이야기 할아버지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빌어먹다가 기운이 다 되면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한 제자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그렇게 객사(客死)를 하면 시신을 수습하기 힘드니 제발 그것만은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이가 먹으니 조금은 졸보가 되어, 그냥 평범하게 죽으면 되겠구나 싶다. 하지만 병원에서 죽고 싶지는 않다.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3.

가파도에서 해안가를 걷다 보면 비석이 세워진 무덤도 있지만, 이름 없는 무덤들이 많이 있다. 밭 한가운데 있는 무덤도 있고, 밭의 한 귀퉁이를 빌려 만든 무덤도 있다. 섬에 사니 수장을 생각할 법도 한데, 유교의 영향으로 매장을 했다. 장지를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자신이 일하는 밭에 묻혔다. 자손들이 그 밭을 물려받았다면 자연스럽게 조상의 무덤을 곁에 두고 일하다가 무심히 무덤을 바라보고 쉴 수도 있겠구나 상상해 본다.

아마도 봉분조차 없이 땅에 매장된 주검이 더 많을 것이다. 제주도는 민중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온갖 수탈과 수난의 역사를 겪은 곳이다. 변방 중에 변방이었다. 변방의 죽음에 관심을 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죽음은 쉬 망각의 역사 속에 다시 한번 파묻혔다. 이름 없는 무덤, 흔적 없는 무덤. 죽음은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기억 없이 사라져 갔다.      

4.

나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죽어간 그 죽음 중에 하나가 되고 싶다. 그러한 죽음이 있으려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삶이 아니라, 삶이 자연스럽듯이 죽음도 자연스럽게 맞이하고 싶다. 살아 있을 때는 잘 먹고 잘 사랑하고 잘 았으면 좋겠다. 굳이 위험한 장소를 돌아다니지도 않고, 위험한 행동도 하지 않고, 친절한 사람들과 더불어 편안한 삶을 살고 싶다.


노자가 살았던 시대, 귀족들은 맹수를 사냥하기를 좋아했고, 전쟁터에 나가 영웅이 되기를 바랐다. 노자가 보기에 그렇게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은 위태로운 이었다. 심지어 남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전쟁따위를 벌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목숨이란 알 수 없는 것이라, 단명하기도 하고, 장수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제명대로 사는 중요했다. 목숨을 재촉하는 것도 늘리려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어리석은 을 반복했다. 그곳이 죽음의 땅, 사지(死地)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지만, 일부러 사지(死地)를 만들 필요는 없다. 노자는 자신이 사는 나라가 사지가 없는 땅, 무사지(無死地)가 되기를 바랐다. 제명대로 살고 죽은 것은 운명이로되, 뜻하지 않게 죽는 것은 참사이고 재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서 죽음으로 들어가지요

장수하는 자가 열 중 셋

일찍 죽는 자가 열 중 셋

굳이 나서서 수명을 줄이는 자가 열 중 셋

왜 그럴까요?

삶에 너무 집착하여 불필요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지요

    

잘 먹고사는 사람이야기를 들어보니

땅을 걸어도 뿔소나 범을 만나지 않고

전쟁터에 나가도 다치지 않는데요

뿔소도 그 뿔을 받을 곳이 없고

범도 그 발톱을 할퀼 데가 없고

무기도 그 날카로움으로 파고들 데가 없대

왜냐고요?

그 사람한테는 죽음의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50장)

    

出生入死 生之徒 十有三 死之徒 十有三 人之生 動之死地者 亦十有三

夫何故 以其生生之厚

蓋聞善攝生者 陸行不遇兕虎 入軍不被甲兵 兕無所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容其刃

夫何故 以其無死地


The Master gives himself up

to whatever the moment brings.

He knows that he is going to die,

and he has nothing left to hold on to:

no illusions in his mind,

no resistances in his body.

He doesn't think about his actions;

they flow from the core of his being.

He holds nothing back from life;

therefore he is ready for death,

as a man is ready for sleep

after a good day's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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