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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13. 2024

14. 어머니

도덕경 52장

1.

어머니. 시인들은 어머니에게 고향을 찾고, 근원을 찾고, 사랑을 찾고, 그리움을 찾아낸다. 어머니와 고향은 변치 않는 시인들의 배경이다. 나는 그러한 시인들의 시를 읽을 때마다, 묘한 상실감과 배신감을 느낀다. 나에게는 그런 어머니는 없다.

나에게 어머니는 그저 한 여인이다. 내가 그저 ‘한 여인’이라는 무감정의 언어를 마련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왜 나라고 어머니의 사랑이 없었겠는가.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어떤 애틋함이 있다. 1남 2녀를 낳아 잘 키우려고 노력했던 엄마가 있다. 똑똑하고 재주 많던 한 여인이 엉겁결에 나를 임신하고 결혼하고 키워온 세월이 있다. 자존심이 강해서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엄격하게 훈육한 어머니가 있다. 놀고 싶어 대충 숙제를 하고 밖에 나가려는 나를 붙잡고 숙제검사를 한 후, 내 앞에서 과제장을 찢고 다시 정성껏 숙제하라고 시켰다. 내가 입을 삐죽거리면 “그래서 한 번 할 때 잘해야 하는 거야.”라고 어른스러운 말을 하는 젊은 여인이 있다. 어머니는 나를 20살 때 낳았다.

당시 대부분의 노동하는 남자들은 자녀의 교육에 관심이 없었다. 나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밖으로 돌았고, 자녀의 양육은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었다. 나의 공부습관은 어머니의 성격이 만든 것이다. 남에게만큼은 어설프게 보이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모습을 나는 쏙 빼닮았다. 그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부모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이혼했다. 나를 포함하여 여동생 둘은 이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 막내는 엄마 따라 지방으로, 둘째는 큰아버지집으로, 나는 하숙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혼 이후 아버지는 여러 차례 다른 여자를 데려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어머니도 많은 남자를 갈아치우며 사셨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를 찾았으나, 다른 남자와 사시느라 가족이 다시 합치지는 못했다. 이후 복잡한 이야기는 멈추자. 어쨌든 세월이 흐르며 꽤나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어머니는 항상 나의 상상 밖의 여인이었다.

어머니는 마지막 남자가 죽은 후 치매 기운이 있어 지금은 둘째네 근처에서 살고 있다. 나를 낳아준 여인이자, 평생을 여자로 살고 싶었던 어머니는 지금도 자존심 하나로 당신의 삶을 버티고 있는 중이다.      


아리디 아린 어머니이야기는 그만하자. 이번에는 다른 어머니 이야기.


2.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를 대지의 여신 ‘가이아’라 불렀다. 가이아는 모든 신들, 대지의 모든 존재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대지의 생명체는 모두 대지를 구성하는 것들로 만들어졌다. 그 모든 존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하나의 온전한 생명체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구 자체가 거대한 생명체이다. 지구의 핵에서는 대지의 심장이 맥동 치고, 대지의 물줄기는 지구에 순환하는 혈관과 같다. 대지의 숲은 허파이고, 대지의 생명체들은 대지에 공생하는 세포들이다.

인간은 지구의 뇌 역할을 하는 존재로 진화했으나, 뇌 역할을 하지 않고 지금은 암세포가 되어 대지를 갉아먹으며 지구를 죽이고 있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이나 바퀴벌레나 잡초들이나 별 차이가 없다. 지구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면 살릴 것이고, 도움이 안 된다면 없앨 것이다. 지금 지구 생명체의 상태를 안다면 지구의 상태를 알 수 있다. 1만 2천 년 전 지구상에 인류는 현재 한반도의 인구 정도였다. 인간이 키우는 가축을 포함하여 지구상의 생명체 중 1% 정도의 부피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지구는 인류와 가축을 포함하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인간은 지구를 식민지로 만들어 약탈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인간문명의 민낯이다.


자연은 종다양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종만 살아남게 만들었다. 다양성이 사라진 생태계는 조만간 작은 위험에도 멸종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그러한 위험성을 알리는 작은 신호일뿐이다. 바이러스와 같은 작은 존재가 지구의 지배자에게 가장 강력한 위협요소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인간과 다른 종과의 생태계가 교란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욕망에 따라 벌여놓은 일들이 인간에게 위협요소가 되어 부메랑처럼 뒤통수를 때린 것이다. 코로나는 종료된 사건이 아니라 시작점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3.

노자는 문명에 의해 파괴되는 자연을 보았다. 전쟁만이 파괴를 초래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탐욕을 정당화하고 합리화시키는 지식, 윤리, 제도, 법이 인간의 삶을 파괴하였다. 잘난 자들이 늘어나자 민중의 삶은 위축되고, 지식이 늘어나자 민중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법과 제도는 민중의 삶을 옥죄고 가두었다. 문명이 정교회 될수록 자연은 황폐화되었다. 지식인의 입과 권력자의 욕망의 문은 활짝 열렸고, 민중의 입과 삶의 문은 닫혀버렸다.

어찌할 것인가? 천하의 어머니인 자연에서 점점 멀어지는 인간의 삶을 어찌할 것인가? 작은 것들은 보지 못하고, 강함만을 숭상하는 이 나라를 어찌할 것인가? 결국 재앙을 당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이 삶을 어찌할 것인가? 노자의 고민은, 마치 현재 생태과학자의 고민과 닮아있다. 생태파괴와 기후 위기가 맞이할 재앙을 눈뜨고 보고 말 것인가? 천하의 어머니, 자연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진정한 밝음은 무엇인가? 진정한 강함은 무엇인가? <도덕경> 52장은 그 고민의 산물이다.

하늘 아래 시작이 있다면

그것을 천하의 어머니라 해봅시다.

어머니를 알았다면

그 자식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자식을 안다면

역으로 어머니를 지킬 수 있지요.

(이를 안다면) 몸이 다하는 날까지 위태롭지 않습니다.     


입을 다물고, 문을 닫으세요.

종신토록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입을 열고, 일을 벌이면

종신토록 헤어 나오지 못할 겁니다.     


작은 것을 봄이 밝음입니다.

부드러움을 지킴이 강함입니다.

빛을 사용하세요.

밝음으로 돌아가세요.

몸의 재앙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것이 영원을 지킴, 습상[習常]입니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旣得其母 以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歿身不殆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謂習常


In the beginning was the Tao.

All things issue from it;

all things return to it.     

To find the origin,

trace back the manifestations.

When you recognize the children

and find the mother,

you will be free of sorrow.     

If you close your mind in judgements

and traffic with desires,

your heart will be troubled.

If you keep your mind from judging

and aren't led by the senses,

your heart will find peace.     

Seeing into darkness is clarity.

Knowing how to yield is strength.

Use your own light

and return to the source of light.

This is called practicing et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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