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윤 Jun 14. 2024

15. 아이

도덕경 55장

1.

아이들은 종일 놀아도 지치지 않고, 종일 묻고 물어도 물리지 않는다. 먹고 싶은 것은 다 입으로 가져가고, 갖고 싶은 것은 모두 손에 쥐려고 한다. 아이들은 만족이 없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울고, 웃기면 웃는다. 싫으며 피하고, 좋으면 다가간다. 생명체로 활발발할 뿐, 도덕이나 윤리는 아이들에게 없다.

아이는 무모하여 위험한 것을 모른다. 금세 싫증을 느끼고 가지고 있던 것을 버린다. 주위력이 산만하여 집중하지 않는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여기저기 옮겨 다닌다. 고집이 있어 생떼를 부린다. 약한 것을 함부로 대한다. 이기적이다. 천방지축이다.

사람들은 아이에게서 천진무구를 읽기도 하고, 순수함을 찾기도 한다. 밝음을 보려는 노력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에게서 어리석음을 보고 미숙함을 읽는다. ‘어리다’는 말의 뜻은 ‘어리석다’이다. 계몽과 훈육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과연 아이들만 그런가? 어른들도 아이와 마찬가지이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칭찬도 받고 혼도 나면서, 이른바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행동이 변했을 뿐. 눈치가 늘었을 뿐이다. 어른들도 틈만 나면, 기회만 되면 어린이의 모습을 보인다. 본성이 변한 것이 아니라 습성이 바뀌었을 뿐이다. 어른 속에는 어린이가 무의식적으로 살아있다. 인간 속에 동물이 생물학적으로 존재하듯이.

아이들을 천사에 비유하고, 순진무구함을 예찬하는 것은 낭만주의의 산물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가족이 신화화되어 미화되듯이, 어린이도 마찬가지였다. 어린이는 어린이일 뿐, 그리고 어른들이 그러하듯이, 그리고 짐승들이 그러하듯이, 개체마다 다른 모양으로 생존한다. 솔직히 나에게 어린이는 미지의 영역이다. 어린 시절을 겪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2.

누구나 한때는 어린이였다. 나에게도 분명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아주 어릴 때는 기억에서 사라졌고, 초등학교 때의 일도 드문드문 가물가물 기억할 뿐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좋았을까? 경제적으로는 힘들었던 것 같다. 집안이 넉넉했다는 기억은 없다. 생활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친구들과 재밌게 놀았다. 학교를 마치고 숙제가 끝나면 저녁식사 전까지 신나게 놀다가, 밥 먹고 또 놀았던 기억이 난다. 노는 걸 싫어하는 아이는 없으니까.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성을 느꼈다. 여자 아이를 보고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어린 시절 짓궂었다. 예쁜 여자 아이에게 심한 장난을 치다가 교회 선생에게 혼난 기억이 난다. 좋다는 감정을 심한 장난질로 표현한 것은 미숙했지만, 혼날 일이었는지는 당시에는 잘 몰랐다. 나는 여자 아이들의 반응을 잘 읽어내지 못했다. 여자 아이는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그저 좋아하는 대상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나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노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이제 어른이 되어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나의 두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나는 아이들의 양육을 거의 아내에게 맡기고 아내가 시키는 일을 주로 했다. 책을 읽어주는 일, 가끔 아이들과 맛있는 것을 먹는 일 등등. 아이들을 될 수 있으면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고,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있게 지원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자라 지금은 둘 다 회사를 다니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나중에 한 번 물어봐야겠다.   

3.

가파도에 어린이는 총 8명. 초등학생 6명, 유치원생 2명. 그중 3명은 금년에 가파도로 이주해 온 집안의 아이들이다. 만약에 오지 않았다면 5명의 어린이만 남을 뻔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가파초등학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유지되고 있다. 가파도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가파초 출신이다. 그러니까 온 동네 사람들이 동문인 셈. 가파도에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다. 젊은이는 모두 본도(제주도)로 나가거나 아예 육지로 나가버렸다. 가파도에 젊은 부부는 눈을 씻고 봐도 이제는 없다. 새로 온 아이들은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잘 크고 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이야기가 실감 나는 곳이다.

생명체가 살고 있는 곳에는 생존과 번식이 지상과제다. 가파도에는 고양이들도 번식을 해서 새로 가족을 구성하는데, 가파도에 사는 사람들은 생존만 있을 뿐 번식을 멈췄다. 초고령 마을일 뿐 아니라, 인구소멸이 걱정되는 곳이다. 새로운 학부모들이 유입돼야 하는데, 주거환경이 좋지 않아 가파도를 선택할 것 같지는 않다. 어린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4.

새로 가파도로 온 아이들을 보면서, 노자는 어린이들을 어떻게 보았을까 상상해 본다. 그 왕성한 활동과 생명력에서 아마도 자연의 힘과 신비를 본 듯하다. 어린이를 신화화하여 표현하였다. 노자에게 어린이는 후덕한 인간의 본질적 모습을 구현한 존재이다. 덕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해할 수 없다고 노자는 말한다. 덕이 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약하고 부드럽지만 속은 강하고 정기가 흐른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억지가 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이처럼 덕이 있는 사람만이 오래 살 수 있다. 그 어린이의 덕을 잃는다면 일찍 끝장난다.

노자의 어린이론은 과학적 접근이 아니다. 그러니까 과학적 진위로 시에 접근하는 것은 원래 의도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신화는 신화로 접근하고, 비유는 비유로 접근해야 그 풍성한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다. 나는 차라리 어린이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하는 노인의 시선을 읽는다. 나이가 들어 아이들을 보면 모든 것이 부럽고 아름답다. 동심(童心)은 아이의 마음이 아니라, 어른들이 바라 보는 아이의 마음이 아닐까. 그 동심의 마음으로 노자는 <도덕경> 55장을 썼다.         

      

덕 있는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습니다.

벌이나 전갈도 그를 쏘지 못하고

맹수도 달려들지 못하고

맹금도 낚아채지 못합니다.

뼈는 무르고 근육은 약하지만 잡은 것을 놓지 않습니다.

아직 성인의 섹스는 모르지만 정기가 넘칩니다.

하루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으니

조화가 지극하기 때문입니다.     

조화를 아는 것이 늘 그러함[常]입니다.

늘 그러함을 아는 것이 밝음[明]입니다.

억지로 삶을 연장하는 것은 재앙[祥]이고

억지로 기를 쓰는 것은 폭력[强]입니다.

만물은 지나치면 쇠하기 마련입니다.

도(道)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가 아니면 일찍 끝장납니다.      


含德之厚 比於赤子 蜂蠆虺蛇不螫  猛獸不據 攫鳥不搏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全作 精之至也 終日號而不嗄 和之至也

知和曰常 知常曰明 益生曰祥 心使氣曰强 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


He who is in harmony with the Tao

is like a newborn child.

Its bones are soft, its muscles are weak,

but its grip is powerful.

It doesn't know about the union

of male and female,

yet its penis can stand erect,

so intense is its vital power.

It can scream its head off all day,

yet it never becomes hoarse,

so complete is its harmony.     

The Master's power is like this.

He lets all things come and go

effortlessly, without desire.

He never expects results;

thus he is never disappointed.

He is never disappointed;

thus his spirit never grows old.

이전 15화 14. 어머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