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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15. 2024

16. 먼지

도덕경 56장

1.

우주의 시작은 먼지와 같은 것이었다. 어떠한 분자도, 어떠한 세포도, 어떠한 생명체도 없이 우주의 시간 대부분을 보냈다. 그리고 우주의 끝은 먼지일 것이다. 모든 생명이 끝나고, 모두 세포가 해체되고, 모든 분자가 끊어져 열평형 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엔트로피의 법칙, 질서는 없어지고 무질서가 유일한 질서일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시작과 끝이다.


우주의 대부분의 시간은 죽음의 시간이다. 현 우주의 대부분의 공간 역시 죽음의 공간이다. 생명은 기이하고도 특이한 현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지구 외에는 그 어떠한 생명체도 살지 않는다. 그러니 살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우주적 사건인가. 그런데 우리는 이 기적과 가까운 생명, 그것도 한시적 생명을 경쟁과 전쟁, 파괴와 소비로 사용하고 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138억 년 전 지구가 생겨나 대부분의 시간은 생명이 없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 후에도 지구는 존재할 것이다. 생명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모든 존재는 무생명이 디폴트값이다. “먼지(흙)에서 와서 먼지로 돌아 가리라.”라는 고대의 지혜를 생각해 보면 섬뜩하다. 우리는 우주의 아이이면서, 먼지의 후손이다. 그러니 기적과 같은 생명이 있는 동안, 서로 돕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살 일이다.      


2.

도시에 살다가 가파도에 살면서 가장 큰 변화는 바람과 먼지와 함께 사는 것이다.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람이고,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것이 먼지다. 아무리 쓸고 닦아도 어디서 왔는지 먼지가 쌓인다. 집과 바깥은 문 하나로 구분될 뿐이다. 더운 날에는 그 문조차 닫을 수 없다. 바람과 먼지를 따라 온갖 다른 생명체들도 집안으로 들인다. 날벌레들도 집안에서 공생한다. 처음에는 바퀴벌레약, 모기약, 해충약을 뿌리면 난리를 피웠지만, 이제는 눈에 띄지 않으면 같이 살기로 한다. (그러니 제발 몰래 숨어 살아라.)


벌레도, 고양이도, 나도 모두 한 운명이다. 먼지이다. 그러니 먼지끼리 될 수 있으면 조금만 피해를 주고 잘 지내보자. 소리 없이 바라보며 마음을 전한다. 인간이라고 더 존귀한 것도, 더 뛰어난 것도, 더 놀라운 것도 아니다. 모든 것들이 다 존귀하고 뛰어나고 놀랍다. 존재의 서열은 없다. 생명의 기한만 다를 뿐. 그 생명의 기한이라는 것조차 우주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찰나일 뿐이니. 부디 평안하시라, 모두들.     


3.

노자는 춘추전국 시대의 사람이다. 춘추전국의 시대로 다른 말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라고도 한다. 온갖 지혜로운 자, 많이 아는 자, 용감한 사람, 성공하고픈 자들이 자신의 논리와 실력을 자랑하고, 출세하여 이름을 날리려 했던 시대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중국철학자들이 이때 등장한다. 손자, 오자는 병법으로, 공자, 맹자, 순자는 예법으로, 상앙, 한비자는 법으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면서 자신의 이론으로 맹주들을 설득하려고 동분서주 하였다.


새로 이론이 정립되고, 법이 만들어지고, 제도가 만들어지고, 군사기술이 변화되고, 농사법이 개발되었다.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고,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싸우고, 더 많이 죽어나갔다. 아무도 지금보다 ‘더 적게!’를 외치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노자는 말한다. 더 적게 말하고, 더 적게 움직이고, 더 적게 묶고, 더 적게 낮추고, 더 적게 가지라. 그것이 존재의 법칙이고, 우주의 법칙이다. “빛을 낮추고 먼지와 하나가 돼라 [和光同塵]”

가깝지도 멀게지도 않게 지내라 . 이롭게 애쓰지 말고 해롭게 괴롭히지 마라. 귀하지도 천해지지도 마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존재의 방식 그대로 인정하라. 제발 망치지 마라. 어차피 다 죽는데, 그러다가 더 빨리 죽게 된다.

“그 입 다물라.” “제발 그만 괴롭히고 그만 죽여라!”그 애타는 마음이 <도덕경> 56장에는 새겨져 있다.

     

알면 말하고 않고,

말하면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입을 다물고 문을 닫으십시오.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얽힌 것은 풀어주고

빛은 부드럽게 줄이고

티끌과 하나가 되십시오.

이를 신비로운 하나됨[玄同]이라 합니다.     

(이런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가깝지도 멀지도

이롭지도 해롭지도

귀하지도 천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故不可得而親 亦不可得而疏 不可得而利 亦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亦不可得而賤 故爲天下貴


Those who know don't talk.

Those who talk don't know.     

Close your mouth,

block off your senses,

blunt your sharpness,

untie your knots,

soften your glare,

settle your dust.

This is the primal identity.     

Be like the Tao.

It can't be approached or withdrawn from,

benefited or harmed,

honored or brought into disgrace.

It gives itself up continually.

That is why it endures.               


<추신>

주제와 관련되어 감상할 만한 곳이 있어 첨부합니다. 켄사스의 <DUST IN THE WIND>입니다.


https://youtu.be/SNI86TZkrwc?si=yDuINIlMl8hbsx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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