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다 보면 물고기가 먹기가 쉽지 않다. 주로 육고기를 먹다가 특별히 물고기가 먹고 싶은 날, 횟집에 가서 회를 시켜 먹는다. 회라고 해봐야 주로 광어나 우럭을 먹는다. 돔 종류 물고기처럼 비싼 물고기는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그러다가 참치가 대중화되자 참치로 갈아타서 특별한 날이면 참치집에 가서 참치를 먹었다. 보통 횟감은 맛이 비슷비슷한데 참치는 그렇지 않았다. 부위별로 모양도 맛도 천차만별이고 크기에 따라 맛의 질이 달랐다.
가파도에 오니 육고기가 드물고, 물고기 천지다. 그것도 평소에 비싸서 먹을 수 없는 물고기들이 낚시꾼들과 어부들에게 잡혀서 밥상에 오른다. 방어, 부시리, 긴꼬리뱅에돔, 넙치농어 ……. 크기도 다양하고 맛도 다양한 신선한 물고기를 잡은 즉시 회를 뜨고, 지리를 끓이고, 조림을 하고, 구이를 한다. 그 비싸다는 무늬오징어도 여기서는 흔하다. 초등학교 아이들도 낚싯대를 들고나가 몇 마리씩 잡아온다.
작은 물고기는 잡아도 아예 가지오지 않고 다시 바다에 놔주거나, 고양이 먹이로 던져둔다. 해안가에 사는 길고양이들은 낚시꾼들이 던져준 물고기로 포식을 한다. 나도 가파도에 와서 작은 물고기는 먹지 않았다. 회를 떠도 얼마 되지 않고, 구워도 쉬 부서지기 때문에, 매운탕 거리로나 쓰인다.
2.
가파도에 산다고 모두 물고기를 실컷 먹는 것은 아니다. 낚시꾼들이라고 모두 나갈 때마다 물고기를 잡는 것은 아니다. 나도 가파도로 내려와 몇 달 동안은 물고기 구경도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민박집 블루오션을 운영하는 낚시꾼 사장님과 친해지면서 그 귀하디 귀한 긴꼬리뱅에돔을 먹어 보았다. (지인들이 속초에서 벵에돔을 먹어보았다고 얼마나 자랑을 했던지.) 회로 썰어놓은 살에서 무지개처럼 영롱한 빛이 나왔다. 이후 그것으로 탕으로 먹어보고, 조림으로도, 구이로도 먹어봤으니 벵에돔으로 해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해 먹어 본 셈이다.
가파도에서 잡은 뿔소라는 또 얼마나 맛있는지, 회로도 먹고, 삶아 먹고 구워 먹고, 라면에도 넣어 먹는 호사를 누렸다. (다른 바닷가에서도 뿔소라가 잡히지만 가파도 뿔소라는 유난히 크고 맛있다.) 성개도 마찬가지. 가파도 성게는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요즘은 성게철인데, 워낙 가격이 비싸 (킬로당 20만 원이 넘는다.) 전량 판매되고, 가게에서나 먹을 수 있을 뿐이다. 해녀들은 성게철에는 바깥에도 나가지 않고 바닷가에서 성게를 딴다. (하루에 1백만 원어치 성게를 딴 해녀를 나는 알고 있다.)
3.
노자는 물고기를 먹어 보았을까? 초나라 출신이니 바닷가에 살았다면 먹어보았을 것이고, 강가에 살았다면 민물고기라도 먹을 보았을 것이다. <도덕경> 60장에 ‘작은 생선’ 이야기가 나온다. “작은 생선을 요리하듯 나라를 다스리라”는 구절을 통해, 노자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 본다. 그리 부유하지 않은 집안, 어머니는 어렵사리 작은 물고기를 구했다. 회를 뜨기에는 너무 작고, 탕을 끓이기에는 양이 적다. 그렇다면 구워줘야지. 물고기가 작으니 구울 때는 조심조심. 불이 너무 세 태우지 않도록, 고기가 뜯겨나가지 않으려면 한 면을 천천히 구운 후, 살짝 뒤집어 다른 면을 구워야 한다. 번잡스럽게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다가는 고기고 뭐고 먹을 것조차 없게 된다. 다 구웠다. 백양아, 밥 먹자!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작은 물고기를 굽는 모습을 지켜본 노자는 커서 이를 정치에 적용한다. 큰 나라라도 작은 나라를 다스릴 때,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조심조심 다뤄야 한다. 괜히 작다고 함부로 대하다가 아무것도 취할 것이 없게 된다. 도(道)도 마찬가지. 자연스러운 것이 도이다. 억지를 부리면 안 된다. 상대방을 해치면 안 된다.
어디 작은 나라뿐이랴. 작은 존재, 약한 존재, 어리고 늙은 존재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것 또한 하늘과 땅이 낳은 생명이다. 그러니 어떠한 존재도 해치지 마라. 악을 행하지 마라. 덕을 쌓아라. 그렇게 말하는 노자가 <도덕경> 60장에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