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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18. 2024

19. 질병

도덕경 71장

1.

건강이란 무엇인가? 질병이 없는 상태인가? 그렇다면 질병(疾病)은 무엇인가? 온갖 병이 질병이다. 병(病)이란 무엇인가? 사전에 따르면 “생물체의 전신이나 일부분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아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현상”이다. 비만은 질병인가? 비만의 기준은? 반대로 빼빼 마른 것은 질병인가? 기준은? 정상이란 무엇을 기준으로 정하는 것인가? 그때그때 달랐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다. 권력은 없는 병도 만들어 내고, 있는 병도 감출 수 있다. 육체의 병뿐 아니라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 광기는 정신병으로 취급받아 격리의 대상이 되지만, 모든 시대가 광기를 정신병으로 취급하고 격리시킨 것은 아니다. 


내가 어릴 적, 동네에는 항상 한두 명의 미치광이들이 함께 살았다. 그들은 격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와 다른 세상을 살아가며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우리 동네에는 서울대를 졸업했는데(사실 확인 불가) 사업과 연애에 실패하면서(확인 불가) 미쳐버린 형이 있었다. (어른들한테 들은 이야기다.) 그 형은 알코올중독까지 걸려 있었는데, 항상 취해 돌아다니며 중얼중얼거렸다. 그래도 어릴 적 동네 친구들은 그 형과 잘(?) 지냈다. 동네 어른들도 그 형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잘해줬던 기억이 난다. 


2.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지식의 고고학>을 통해 지식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밝혔다.

푸코는 “지식이 권력”이라는 말을 하면서, 특정한 상태를 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식은 시대를 초월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별로 형성된 지식과 이를 반영한 통치술에 따라 변해왔으며, 지식인(전문가) 역시 시대에 따라 변화했음을 이야기한다. (이를 역사적 구조주의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근대 이전의 위생과 이후의 위생은 너무나 다른 차원으로 다뤄졌다. 예를 들어 똥은 유용한 비료의 재료였는데, 근대 이후로는 더럽고 불결한 오물로 규정되었다. 그에 따라 푸세식 변소는 양변기로 대체된다. 그리고 해충박멸이라는 구호 아래 구충제가 대량으로 보급된다. 공생에서 위생(衛生)으로의 전환은 가장 강력한 통치영역 중에 하나다. 그 극단적인 형태를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경험하였다.


주로 아침방송 시간에 건강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많이 편성하여 주부들의 시간을 빼앗는다. 건강식, 건강재료, 건강운동, 건강수술, 건강관리술, 힐링...... 방송에 나오는 건강재료들은 빠르게 판매되어 소진된다.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먹어대는 우리네 식습관이 이를 더욱 촉발시킨다. 건강을 위해 소비하는지, 소비를 위해 건강한지 헷갈릴 지경이다. 우리는 생각 없이 즉물적으로 건강을 추구한다. 정작 건강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3.

아픈 사람이 아픈 줄 모른다면 결국은 그 아픔이 죽음을 불러올 것이다. 암이 무서운 것은 대부분 초기에는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아프지 않다는 점이다. 통증을 느낄 정도가 되면 이미 늦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오히려 늘상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며 조심하고 살아간다. “골골 팔십 년”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병이 병임을 알면 그 병은 더 이상 위험한 병이 아니다. 설령 병으로 죽는다 하더라도 대책 없이 느닷없이 죽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하고 나서 고혈압과 심장질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전에는 내가 그런 병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다. 건강검진이라는 것을 하고 나니, 나의 몸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후 고혈압약을 달고 살았다. 게다가 몸집도 불어 고도비만이라는 진단도 받았다. (내가? 겨울에 비친 내 모습은 그럭저럭 볼만하던데.^^) 정점을 찍을 때는 123킬로그램이었다. 

가파도로 내려와 규칙적으로 살다 보니, 몸무게가 103까지 떨어졌다. 무려 20킬로나 빠진 것. 하지만 더 내려가지 않고, 다시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가파도에 적응한 몸이 정상성을 되찾은 걸까? 술일까? 밥일까? 안주일까? 아니면 삼위일체?     

자, 어디서부터가 비만인가? 모두 정상 아닌가? 

4.

노자의 철학을 계승한 것이 도학(道學)이라면, 이를 종교화한 것이 도교(道敎)다. 물론 도교는 중국의 민족종교로 신선사상, 음양오행설, 점과 굿 등 민간종교사상과 도가사상을 결합시킨 것이니, 순수한 노자의 종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양생술을 바탕으로 하여 신선의 경지까지 도달하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을 목표로 하니 신비주의적 경향도 있고, 나중에는 불가의 영향까지 흡수하여 발전해 갔다. 노자뿐 아니라 전설적인 통치자 황제를 신봉하여 황로(黃老)교라고도 한다.

<팔선도> 도교에서 숭상하는 8명의 신선의 모습. 젊음과 늙음도, 비만도 날씬도 남성도 여성도 차별이 없다. (남자가 많기는 많다.^^)

노자는 자신의 생각이 종교적으로 이용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아마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노자는 개인의 건강과 장수(長壽)뿐 아니라 사회의 건강과 오래감에도 관심이 많았다. 지도자라면 무병장수(無病長壽)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이 겸손이다. 지식의 측면에서 보면 지식의 한계를 아는 것이 겸손의 조건이다. 앎이나 건강에 확신을 갖기보다는 겸손한 마음과 태도로 앎과 몸을 관찰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도덕경> 71장에 이렇게 썼다.     


알지 못함을 아는 것이 가장 훌륭합니다.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하는 것은 병입니다.

병을 병으로 알아야만 병이 되지 않습니다.

성인은 병이 없습니다.

병을 병으로 알기에 병이 없는 것입니다. 

    

知不知上, 不知知病, 夫唯病病, 是以不病, 

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Not-knowing is true knowledge.

Presuming to know is a disease.

First realize that you are sick;

then you can move toward health.     

The Master is her own physician.

She has healed herself of all knowing.

Thus she is truly w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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