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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11. 2024

12. 리더

도덕경 49장

1.

중고시절부터 단체생활을 하다 보니 간부를 맡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청년회(중민청) 활동도 오래 했는데 그때 회장을 맡아서 모임을 운영했던 적이 있다. 구성원이 많다 보니 욕망도 다양하여 그 욕망을 모두 채워줄 수는 없었다. 회의를 통해 중지를 모으고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는 것으로 모임을 운영하였다. 물론 그 중지를 모으는 과정에서 나의 의견이 깊이 반영되었다. 회장이니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 내 뜻이 가장 중요하다가 착각했다.

‘리더란 지도하는 자’라는 리더관은 자칫 잘못하면 독재로 흐를 가능성이 컸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하면 많은 구성원을 소외시키고 입다물게 한다는 것을 젊은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다. 정의감 넘치고 혈기방자 했지만, 그만큼 경직되고 유연하지 못했다. 성장만 생각하고 성숙은 내팽개쳤다. 익기 전에 따먹으려 했다. 덜 익은 열매가 맛도 없고, 배탈을 유발하는 것처럼, 덜 익은 지도자도 마찬가지였다. 감동도 없고, 문제를 일으켰다. (당시의 대부분의 리더가 이러한 잘못을 반복했다. 슬픈 역사였다.)    

2.

나이가 들어 다시 모임에 참가하거나 모임을 만들 때, 내가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던 운영 원리는 ‘반드시’란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인가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무르익기 전에 집행하지 않았다. 모든 일은 때가 있었다. 그때를 놓치거나 앞당기면 무리가 뒤따랐다.

때를 안다는 것은 조건을 안다는 것이고, 사람살이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사람이었다. 따라서 리더는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상태를 파악하는 사람이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도 하지 말아야 함을 아는 사람이다. 리더는 중심을 지키는 사람이되, 그 중심은 항상 같이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리더는 자신을 비우는 사람이다. 자신의 욕심을 최대한 내려놓아야 한다. 욕심이 없으니 바라는 것이 없고, 바라는 것이 없으니 원망도 없게 된다. 원망이 없으니 미워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없게 된다. 리더는 개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리더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리더가 있는 조직은 항상 파벌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리더는 없이 존재하는 사람’이 최상이다.     

 

3.

가파도에 내려와 우연치 않은 기회에 마을총회를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총회에서 평소와는 다른 마을 사람들을 경험했다. 평소에는 말없이 지내던 분들이, 목소리를 높일 때에는 무자비했다. 착하게만 보이던 분들이 자신의 이권 앞에서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괸당(파벌) 문화는 깊게 뿌리 박혀 외지인이나 다른 괸당에 대해서는 외면했다. 마을 전체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이권을 먼저 생각하고 챙겼다.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갇혀 논의가 공회전하였다. 생산적인 논의보다는 소모적이고 과시적인 이야기가 지배했다. 아마도 처음으로 가파도에 실망(?)한 순간이었다.

물론 시간이 흘러 이러한 부정적 판단도 가파도를 아는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의 충격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과연 외지인인 나는 가파도에서 주민의 일원으로 살 수 있을까? 이분들과 더불어 뭔가 아름다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또 한 발 앞서가려고 하고 있구나 반성하게 되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출발하려고 하지 않고, 또 과거의 습성이 살아나 내가 생각하는 대로 바라보고, 판단하고, 실망했구나 생각하니 내가 도리어 부끄러워졌다. 삶의 변화가 적은 사람들은 작은 변화에도 경계심을 갖게 되고, 작은 이익에도 스스럼없이 움직이는 것이 당연지사였는데, 그 단순한 사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나는 참으로 한참 멀었구나 생각했다.  

4.

노자는 중국천하의 중심인 노나라의 관료로 지내며 수많은 지도자를 경험하였다. 주나라뿐 아니라 제후국을 다스리는 지도자들을 알고 있었다. 당시는 신분사회였고, 왕 밑으로 공경대부(公卿大夫)가 중국을 분할하여 다스리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봉건사회였다. 노자는 많은 지도자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지도자상을 그려 나갔다. 노자는 지도자를 네 종류로 나누었다. 없이 있는 지도자, 칭찬받는 지도자, 두려운 지도자로 분류하고 처음의 지도자를 최상으로 여겼다. 최하, 최악의 지도자는 손가락질당하는 지도자, 놀림받는 지도자였다.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하나도 없으면서 지도자 노릇을 하는 자들이었다. (아, 왜 갑자기 한숨이 나오는가?)

그리고 최상의 지도자의 마음자세를 구체적으로 49장에 써놓았다. 최상의 지도자는 고정된 마음이 없어야 한다.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선악을 구별하지 않고 선으로 대하고, 신불신을 구별하지 않고 믿음으로 대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섞지 않고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백성들이 이목에 사로잡혀 행동할 때, 백성을 어린아이 돌보듯이 귀하게 자라는 속도에 맞춰 대해야 한다.

과연 그러한 지도자가 당시에 있겠냐마는, 하늘이 만물을 차별 없이 대하듯, 지도자는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상상하였다.      

위대한 지도자는 고정된 마음이 없지요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아요     

선한 사람만 선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선하지 않은 사람도 선하게 대해요

그게 선을 쌓는 거예요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믿음으로 대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도 믿음으로 대하지요

그게 믿음을 쌓는 거예요     

위대한 지도자는 세상을 그대로 끌어안고

자신의 마음을 섞지 않아요

사람들은 모두 눈과 귀를 따르지만

위대한 지도자는 그들을 어린아이처럼 대하지요 (49장)     


聖人無常心 以百姓之心爲心 善者 吾善之 不善者 吾亦善之 德善矣 信者 吾信之

不信者 吾亦信之 德信矣 聖人之在天下歙歙焉 爲天下渾其心 百姓皆注其耳目 聖人皆孩之


The Master has no mind of her own.

She works with the mind of the people.     

She is good to people who are good.

She is also good to people who aren't good.

This is true goodness.     

She trusts people who are trustworthy.

She also trusts people who aren't trustworthy.

This is true trust.     

The Master's mind is like space.

People don't understand her.

They look to her and wait.

She treats them like her own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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