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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07. 2024

오늘 :  몸

2024. 6. 7.

1.

가파도에서 지내다 보면 머리보다는 몸 쓰는 일이 많아진다. 자전거를 꺼내고 다시 넣는 일, 해안 쓰레기를 줍는 일, 클 린하우스를 지키는 일, 소방훈련을 하고 자율방범 차원에서 섬을 순찰하는 일, 청소하고 분리 수거하는 일, 작물을 심고 거두는 일, 물질하여 소라나 전복을 거두는 일, 바위에 붙어있는 거북손이나 삿갓조개를 따는 일, 낚시하고 요리하는 일, 밥과 반찬을 만드는 일. 출퇴근하는 일까지 몸 쓰는 일이  널려있다. 가파도에서  살려면 머리보다는 몸을 더 써야 한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부지런히 몸을 쓰고 살아간다.


2.

여름이 되면 장마와 태풍 등 자연상태가 좋지 않은 날들이 많아진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배편도 줄어들고, 덩달아 수입도 줄어든다. 이를 보충할 일을 찾아야 한다. 며칠 전 일찌누나가 새벽에 해안쓰레기 줍는 일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다. 도서지역 지원사업으로 2명을 한시적으로 고용하여  그 일을 맡기니, 대정읍사무소에 들러 신청해 보라는 것이다.


쉬는 날 아침 첫배 보내고, 오전에 줌수업을 마친 후 12시 20분 배에 오른다.  3시 50분 막배를 타고 다시 들어오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읍사무소에 들러 등본을 떼고 신청서 작성하여 담당과에 제출해야 한다. 그 일이 끝나면 반찬거리와 일상용품을 구입하러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다. 쉬어도 쉬는 날이 아니다.


3.

읍사무소에 들러 신청서를 작성하는데 5장이나 쓸 게 있다. 모두 개인정보와 관련된 동의서들이다. 동의를 하지 않으면 신청이 어려우니 동의를 했지만, 내 정보가 이후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다. 정부와 행정을 믿어야겠지만, 마음 한 켠에 찝찝함이 남는다. 정보화사회가 되면 될수록 프라이버시 문제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인 서민은 하라는 대로 할밖에.

신청을 마치고 홍마트에 들러 장보고, 순댓국집에서 식사를 주문하니  벌써 2시가 다 되어간다. 밥을 먹고, 다이소, 온누리빵집에 들르면 된다. 다행인 것은 운진항 직원이 자가용을 빌려줘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것. 막배 전에 가파도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4.

평생 머리만 쓰다가, 나이 들어 몸을 쓰게 됐다. 몸 쓰는 일은 고양시에서 주말농장을 했던 것 말고는 없다. (아, 대학시절 오토바이 타고 신문을 배달한 적이 있구나.^^) 농사짓는 일도 수월하지 않았다. 기본자세부터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 신청한 해안 쓰레기 수거일을 하게 되면 부지런히 몸을 놀려야 하는데 살짝 걱정이다.  저질 체력은 아니니, 내 몸을 믿을 밖에. 그나저나 일단은 서류심사부터 통과하고. 김칫국을 미리 마실 필요는 없으니까. 일단 밥이나 먹자.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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