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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11. 2024

오늘 : 병가

2024. 6. 10.

1.

이틀 동안 끙끙 앓았다. 식은땀이 흐르고, 정신이 아득하고, 목이 부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침도 제대로 못 삼키고, 물을 마시다가 토하기도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진하게 앓았다. 매표소에서 겨우 하루를 버티고 집에 들어가 대충 밥을 먹고 계속 잤다. 제발 다음날 아침에는 증세가 나아지길 바라면서.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도 증세는 완화되지 않았다. 나를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스스로 돌봐야 했다.

선사에 연락해서 대체인원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첫배를 타고 모슬포로 갔다. 우체국 앞에 중앙의원을 찾아갔다. (선사에 물어서 근처 병원 중에서 갈만한 곳을 의뢰했다.) 30분을 대기하다가 의원을 만났는데, 증세를 듣고 진찰을 하더니 목이 심하게 부었다고, 링거를 맞고 약을 먹으라는 처방을 했다. 링거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나는 빨리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놔달라고 했다. 비타민에 마늘주사까지 가장 비싼 링거를 맞으며 한 시간 반 남짓 침상에 누워 잠을 잤다. 링거를 다 맞고도, 잠시 더 잠을 청했다가 일어나니 오후 12시.

거짓말 같이 몸이 한결 나아졌다. 섬에 있으니까, 자주 밖에 나오지 못하니까 약을 많이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약국에 들러 보름치 약을 탔다. 몸이 나아지니 배가 고팠다. 순댓국집에 들러 특으로 시켜 국물까지 다 먹었다. 시장을 볼까, 도서관에 들를까 잠시 망설였지만, 몸이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닌데 무리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일찍 들어가서 집에 돌아가 하루 정도 더 푹 쉬자고 생각했다. 3시 배를 타고 가파도로 돌아왔다.

2.

섬에 들어가 매표소로 가니 택배상자가 3개가 도착했다. 상자 2개는 지인이 매표소에 도서관을 만든다고 하니 응원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을 정리해 보내준 것이고, 1개는 내가 알라딘에 신청한 책이었다. 책을 보내준 지인은 이전에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분이었다. (카톡으로 도착을 알리고 감사의 메시지를 날리니, 다음번에 본격적으로 도서관을 하면 더 보내줄 테니 알려달라는 답신이 왔다.) 사람살이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가파도에 내려와 혼자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고 사는 것이로구나 생각하니 고개가 숙여진다. 곰곰 생각해 보니, 수많은 도움의 손이 나를 받쳐주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저도 다른 분들을 보이지 않게 도우며 살겠습니다.)

게다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고양이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며 글을 쓰는 '할망' 작가가 고양이 간식과 내 간식을 봉투에 챙겨 놓고 갔다. 가파도에서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이렇게 자상하게 고양이 간식(내 간식은 덤으로)을 챙기는 마음이 고왔다. 우리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도움과 연대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는 거다. 노자에 "하늘의 그물은 성겨도 놓치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섬세하게 연결되어 있다.


3.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으로, 정성으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망이 있어서 우리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힘들어도 다시 걸을 수 있다. 나도 그 그물망의 한 씨줄과 날줄이 되어 든든하게 이 세상을 떠받들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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