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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20. 2024

오늘 : 2.6 / 13 / 1킬로미터

2024. 6. 20.

1.

어제저녁부터 계속 비가 내린다. 호우 특보와 강풍 특보가 내린 상태다. 아침에 일어나 운진항 상황을 체크하니 배가 뜨긴 뜨는데, 시간을 확정할 수 없다는 소식이다. 이럴 때는 터미널로 출근하여 스탠바이 상태로 있어야 한다. 배가 뜨면 발권을 해줘야 하고, 배가 뜨지 않으면 다시 스탠바이 상태로 있어야 한다. 애매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차라리 풍랑주의보가 내리면 터미널을 닫아 버리면 그만이다.

5월에는 5일 날 풍랑주의보가 하루 내렸고, 6월은 현재까지 풍랑주의보가 한 차례도 없었다. 예전 같으면 풍랑주의보가 하도 자주 내려 곤란했는데, 5월 6월은 풍랑주의보가 내리지 않아 은근히 주의보를 기다리게 된다. 하루쯤 아무 일 없이 푹 쉴 수 있기 때문이다.


2.

과거 항해사였던 이장의 전언에 따르면, 파고가 2.6미터 이상이거나, 풍속이 초당 13미터 이상이거나, 가시거리가 1킬로미터 미만일 경우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린다고 한다. 2.6/13/1킬로미터! 메모장에 적어 두고 기억에 담아두려고 한다. 가파도에 내려와 아침이면 보는 엡이 기상청과 Windy다. 그때그때의 기상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엡이라 아주 유용한다. 1주에서 2주 사이의 기상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내일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데, 내일 기상을 보니 풍랑으로 위험하다면 오늘 마지막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파도와 바람과 안개, 셋 중 어느 하나만 안 좋아도 배는 안 뜬다.

3.

오늘 아침 출근하여 상황을 점검하니 우선 첫배는 뜬다고 한다. 첫배가 뜨고 거기에 관광객이 탔다면 11시 배도 떠야 한다. 들어온 사람들은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바깥을 보니 안개가 짙게 깔리고 있고,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아마도 11시 배가 마지막일 듯싶다. 반휴일인 셈이다.

뭘 할까? 미역국을 끓여야겠다. 요즘 날씨가 변덕이 심해 밤에는 바람이 심하게 분다. 집안에 있어도 약간 을씨년스럽다. 여름이 다 되어도 밤에 이렇게 추운 것은 섬이라는 특수 조건 때문일 것이다. 지난번 감기에 걸려 고생했는데, 목이 다시 간질간질하다. 이번에는 방비를 철저히 해야지. 옷도 다시 잘 챙겨 입고, 따뜻한 차도 많이 마시고, 뜨끈한 음식으로 몸을 돌봐야겠다.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한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4.

사실 요 며칠간 컨디션이 안 좋았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밑의 동생이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갔고, 뇌혈관수술로 목숨은 건졌지만 아직 의식이 깨어나지 못한 상태임을 알았는데도, 나의 사정이 사정인지라 속수무책으로 아무 일도 해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계속 마음을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걱정을 해봐야 도움도 안 되고, 도리어 내가 더 안 좋아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울해지는 것은 어 수 없었다. 잠시 마음을 접어 놓고 근무를 해야 했지만, 마음이 그렇게 딱지 접히듯이 딱 접히지는 않았다.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나를 휘감곤 했다. 참으로, 인간은 약하고 무력한 존재로구나 한탄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금요일 정기휴일인 데다가 토요일 휴가를 추가하여 이틀 동안 시간이 생겼다는 점. 내일은 첫배를 타고 나가 비행기를 타고 부산(김해) 공항에 내려 동생이 있는 양산으로 간다. 동생뿐 아니라 동생이 돌보던 어머니도 걱정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일단 가서 상황을 알아보고, 대책을 마련해야겠다. 섬에 묶여 있는 신세라, 오랫동안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잠시 시간을 내서 갈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이 모든 일들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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