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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26. 2024

25. 세금

도덕경 75장

1.

국가는 국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걷는다. 세금에는 수입에 따라 세율을 적용하여 세금을 걷는 직접세와 수입과 상관없이 상품을 소비하면 동일한 비율로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간접세가 있다. 잘 사는 나라는 간접세율을 낮추고 직접세율을 높임으로써 경제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많은 수입을 얻은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상식이다. 당연히 수입이 적은 사람은 세금을 적게 내게 되어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업과 부자의 세금부담을 줄이는 정책을 펴고 있다. 법인세를 낮추고, 상속세를 줄이고, 종합소득세를 없애고자 한다. 부자들이나 기업의 투자의욕을 높이겠다는 명목이다. (하지만 명목과는 반대로 투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부자들의 세금을 줄이면 나라 살림을 하기 힘들다. 국고가 비면, 가장 많이 힘든 것은 서민이다. 서민들의 복지는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다. 가난한 서민이 울고 있는데 빰을 때리는 격이다. 경제불평등은 심화되고, 양극화는 가속화된다.


부자들에게 부가하는 세금을 낮추는 대신, 이를 보충하기 위해 근로소득자에게 과중한 세금을 걷는다. 근로소득자는 유리지갑을 가지고 있다. 수입이 투명하게 공개되니 원천징수가 가능하다. 서민의 허리띠는 더욱 줄어든다. 게다가 불가피하게 빌린 각종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평소에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든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자마자 다시 나가 버린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드니 소비가 위축되고, 소비가 위축되면 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들이 고통받는다. 경제의 순환이 난황을 겪고, 투자가 아니라 투기를 통해 한몫 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건전한 경제활동은 점점 비웃음을 당한다.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는 노동소득보다 불로소득이 많은 나라는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어 결국 붕괴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을 증가시켜, 이를 경제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부자세’를 증가시키는 전략이다. 하지만 기업의 자유만을 사랑하는 신자유주의 지향형 국가는 피케티의 경고를 무시한다. 부자들은 웃고, 빈자들은 운다. 고통으로 절규하는 사람이 넘쳐나게 된다. 국가는 불행해지고, 위태로워진다.


2.

어렸을 적에 수입이 없는 사람은 세금을 안 낸다고 생각했다. 반만 맞는 말이다. 직접세를 안 낼 뿐이다. 수입과 상관없이 소비를 하면 세금은 저절로 거두어진다. 간접세를 내지 않는 방법은 소비하지 않는 것 말고는 없다. 하지만 소비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거지도 세금을 내고 사는 것이다. 갓난아이로부터 무덤에 들어가기 직전의 사람까지 살아 숨 쉬는 동안 하루도 세금을 안 내는 날은 없을 것이다. 간접세는 부자나 거지나 동등하게 매겨지는 값이다.


예를 들어 내가 하루에 담배 한 갑을 소비한다면 그에 따라 내가 내는 세금은 8억짜리 건물을 가지고 있는 건물주가 건물에 대해 내는 세금과 비슷하다. 2갑을 핀다면, 나는 아주 많은 세금을 내는 납세자가 되는 것이다. 담배뿐이랴. 껌을 씹어도, 기름을 넣어도, 외식을 해도, 버스나 택시, 비행기를 타도 꼬박꼬박 따박따박 세금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가난한 서민들도 사실 엄청나게 모범적인 납세행위를 매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서민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세금이라는 빨대가 꽂힌 채 살아가는 셈이다. 국가는 본질상 흡혈귀고, 세금은 혈세다.     

 

3.

평생을 거의 백수(좋은 말로 프리랜서)로 살아왔다. 책을 내고, 강의를 하고, 모임을 운영해도 은행에서는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 일정한 수입을 보장하는 직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은행의 기준에 따르면 일용잡직이었다. 일정한 금액을 은행에 저축해놓지 않았다면 담보 없이 대출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학원에 취직했을 때 대출이 가능했다. 내집마련의 꿈이 실현될 뻔 했었다. 하지만 가계대출에 따른 이자와 원금상황은 삶을 궁핍하게 만들었다. 융자로 어렵사리 얻은 집을 팔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 전세와 월세를 전전하며 살았다.


가파도로 내려와 1년 계약 알바직으로 취직을 했다. 4대 보험이 보장되는 회사였다. 매월 월금명세서를 받아보면 다양한 항목이 세금조로 빠져나갔다. 고정급이 아니라 시급 알바이기 때문에 수입이 불안정하지만, 밥 먹고 사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어졌다. 나는 간접세뿐 아니라 직접세도 성실하게 납부하는 시민이 되었다.     


4.

노자가 살았던 시대에도 당연히 국가가 운영되려면 세금을 거둬야 했다. 신분제 사회였기에 귀족들은 세금이 면제되었다.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농민들에게 주로 세금이 부과되었다. 세금의 용도는 다양했지만 국가유지를 위한 것이지 농민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농민들은 전쟁, 공공근로, 강제부역에 동원되었다. 귀족들은 황금빛 미래를 약속했지만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관료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그 거짓말을 가리기 위해 거짓말을 또 보탰다. 희망은 없었다. 그릇에 가득 밥을 담아 먹겠다는 소박한 꿈은 늘 좌초되었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는 범보다 야수적이었다. 인정사정 두지 않았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죽을 거라면 윗놈들에게 대들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백성이 늘어났다. 민란이 터지고, 민심은 어지러워졌다. 전쟁통에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 세금이란 무엇인가? 백성이란 무엇인가? 노자는 묻고 또 물었다. 올바른 정치의 길은 없는가? 생각하고 생각했다. 잘났다는 놈들, 똑똑한 놈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은 과연 살만한가? 그도 아니라면 어찌할 것인가? 노자는 공분(公憤)으로 피가 끓었다. <도덕경> 75장은 그렇게 쓰였다.       

영화 <민란>의 한 장면. 양반에게 빼앗은 쌀을 나눠주고 있다.

백성이 굶주리는 것

윗놈들이 세금을 너무 많이 걷는 탓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입니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윗놈들이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백성이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윗놈들이 제 살기에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삶에 구차하지 않은 백성들이

삶에 연연한 윗놈들보다 (차라리) 더 현명합니다. (75장)   

  

民之饑, 以其上食稅之多, 是以饑,

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是以難治,

民之輕死, 以其上求生之厚, 是以輕死,

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When taxes are too high,

people go hungry.

When the government is too intrusive,

people lose their spirit.     

Act for the people's benefit.

Trust them; leave the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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