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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24. 2024

23. 잔꾀

도덕경 65장

1.

어릴 적 가지고 있는 것이 거의 없어, 가진 것이 없어도 가질 수 있는 것이 지식이라 생각하고 책을 많이 읽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돈 없이도(?) 접할 수 있는 것이 책이었다. 지식을 무한히 많이 축적하면 부자가 될 가능성이 조금은 더 높아지는데 소용이 되지 않을까, 아니 부자는 아니더라도 가난을 벗어나는데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돈이 되는 지식과 돈이 되지 않는 지식이 있을 수 있고, 내가 해왔던 공부는 돈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권력을 생산하는 지식, 돈을 축적하는 지식은 희귀한 것이라 가난한 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고, 권력자와 부자들의 리그에서만 통용되었다. 철저한 정보비대칭의 사회였다. 나는 돈과도 권력과도 먼 지식을 습득하느라 젊은 날을 보내버렸다. 위로라면, 그 알량한 지식 덕분에 이나마라도 버틸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2.

돈도 권력도 되지 않는 이 지식을 사람들은 인문학이라 불렀다. 쓸모없는 지식, 그래서 위험하지 않은 지식, 자신을 위무(慰撫)할 뿐, 남을 괴롭히지 않는 지식, 높이 올라가지는 못하고 밑으로 파고드는 지식, 중심에 있지 못하고 경계선에 서 있는 지식, 아니면 아예 경계 밖에 있어 존재 자체를 의심받는 지식, 남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지식! 장자(莊子)식으로 표현하면 쓸모없음이 쓸모인 지식, 노자(老子)식으로 표현하면 텅 빈 지식!


나이가 들어가니 이 지식도 버겁다. 모든 지식을 내려놓고 몸 하나만으로 버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교양이니 위로니 용기니 포장재를 바꿔가면서 판매하지만 별로 소용되지도 도움 되지도 않는 짓을 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던가.    


3.

가파도에 내려오니 내가 알고 있는 지식 없이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지식을 도구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단순노동에 기초한 삶을 살아간다. 자리를 지키며, 배 시간을 확인하고, 표를 팔고, 표를 바꾸고, 묻는 말에 답하고 원하는 것을 해주며. 삼시 세끼 밥 먹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며, 좋은 사람만 만나면 웃고, 나쁜(?) 사람 만나면 피하고. 피곤하면 눈을 감고, 졸리면 자고, 아침이면 깨고, 저녁이면 잠에 드는 삶. 때로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누거나 얻어먹고. 이렇게 늙다가 죽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삶.    

물론 가파도는 섬이라 폐쇄사회에 가깝다. 소문은 순식간에 돌고, 권력은 직접 작동한다. 별 볼 일 없는 지식과 별 볼 일 없는 권력도 증폭된다. 정보는 확대되고, 권력은 적나라하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별별 사람이 다 있다. 금세 들통날 오(誤)정보를 퍼뜨리는 사람, 자신의 이권을 극대화하려고 정보를 왜곡하는 사람, 남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권을 챙기려는 사람,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욕하는 사람,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서 지식과 권력이 흐른다. 밖에서 보면 소꿉장난 같지만, 안에서는 전쟁이 선포된다. (물론 이러한 표현도 심한 과장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루할 정도로 평온한 곳이다.) 고작 천 원 때문에, 만 원 때문에, 기껏해야 10만 원 때문에, 100만 원 때문에 갈등이 풀리지 않는다. 되지도 않는 말을 하고, 있지도 않은 말을 하고, 해서는 안 되는 말도 오간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은 다 같겠지만, 아주 작고 좁은 곳이라 더욱 눈에 띈다.     

5.

노자는 모든 앎을 같은 값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앎이 있고, 사람을 죽이는 앎이 있다. 알수록 겸손해지는 앎이 있고, 알수록 잘난 척하는 앎이 있다. 같은 칼이라도 사람을 살리는 매스가 될 수 있지만,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앎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그 앎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경직된 앎인 법으로 사람을 옥죄는 세상이었다.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위해 지식인들은 자신의 앎을 흉기 휘두르듯이 사용했다. 노자는 “차라리 앎을 숭상하지 말자. 그래야 백성이 다투지 않는다(3장)”라고 극단적으로 말했다. “쓸데없는 곳에 앎을 쓰느니 차라리 배를 우고, 몸을 튼튼하게”하자고 말했다.

지식이 능사는 아니다. 지식보다 우선하는 것은 덕(德)이다. 알량한 지식으로 서로 다투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대하자. 차가운 지식으로 남을 판단하지 말고, 따스한 마음으로 남을 끌어안자. 잘난 척 그만하자. 충고, 조언, 판단, 지적질은 그만하자. 지식은 노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만, 덕은 눈에 보이지 않아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윽하여 더욱 효과를 발휘한다. 이익을 좇는 얕은 인간이 되지 말고, 하늘을 따르는 깊은 인간이 되자. 지도자라면 더더욱!


사람들아, 잔머리 그만 쓰자. 잔꾀를 부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작은 기술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금방 들통난다. 결국 화를 입는다. 잔머리를 쓰는 사람들이 넘쳐 나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그런 곳에서 살고 싶은가? 서로 속고 속이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사회에 사는 사람은 불행하다. 지금이 그런 세상이다. 아, 하늘과 땅처럼 그윽한 사람, 보이지 않는 정성이 몸에서 배어 나와 친절한 사람, 너무나 편하여 자연 속에 있는 것 같은 그런 사람, 없는가? 어디 없는가?      

옛날에 도를 잘 실천하는 사람은

백성을 명민하기 하지 않고 오히려 아둔하게 했습니다.

백성을 다스리기 힘든 것은 그들에게 잔꾀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잔꾀로 나라를 다르시면 나라에 큰 재난이 생기고

잔꾀로 다스리지 않으면 나라에 큰 복이 생깁니다.

이 두 가지가 깨닫는 것이 하늘의 법도이고

이 법도를 항상 품고 있는 것을 그윽한 덕[玄德]이라 합니다.     

그윽한 덕은 깊고 아득하고

만물과 함께 돌아오며

지극한 도의 순리를 따릅니다.(65장)     


古之善爲道滋 非以明民 將以愚之 民之難治 以其智多 故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知此兩者 亦楷式 常知楷式 是謂玄德 玄德 深矣 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


The ancient Masters

didn't try to educate the people,

but kindly taught them to not-know.     

When they think that they know the answers,

people are difficult to guide.

When they know that they don't know,

people can find their own way.     

If you want to learn how to govern,

avoid being clever or rich.

The simplest pattern is the clearest.

Content with an ordinary life,

you can show all people the way

back to their own true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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