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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25. 2024

24. 싸움

도덕경 73장

1.

개인적인 관계 사이에서 싸운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본다. 인생을 통틀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싸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몸이 허약하거나 싸우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나는 몸집도 크고 힘도 세며, 중학생 때에는 유도도 배웠다.) 목소리가 작아서도 아니다. (나는 엄청 크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 나는 내가 다치는 것도 남을 다치게 하는 것도 싫어한다.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정말로 싫어한다. (영화에서 이 물리적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사하는 것을 보면 영화라 할지라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말로 해결할 수 있는 갈등을 주먹으로 해결하는 것은 쉬울지는 몰라도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잘 싸우는 사람은 용감한 사람인가? 용감함이란 잘 싸우는 것이 아니다. 잘 못 싸워도 용감할 수 있고, 싸우지 않더라도 용감할 수 있다. 그러니까 폭력이나 힘과시는 용감과는 상관없는 행위이다. 화를 잘 내는 것도 용감과는 상관이 없다. 그냥 성격이 그런 것일 뿐이다. 오히려 화를 누그러뜨리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것 또한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성격이 아니라 훈련에서 나오는 태도다. 용기는 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큰 사랑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강조하고 하늘과 땅과 같은 광대한 기운을 키우기를 원했다. 그것은 일종의 도덕심을 키우는 것이다. 맹자는 인간의 마음속에 인의예지(仁義禮智)를 키울 수 있는 씨앗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씨앗을 잘 키우면 성인(聖人)이 되고, 잘 못 키우면 소인배(小人輩)가 된다.     

2,

가파도에 와서 제일 놀란 것은 주민들의 목소리가 정말 크다는 것이다. 성량이 얼마나 큰지 두 세 사람만 모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게다가 말이 짧아 화를 내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가파도는 바람과 물결이 거세서 해녀들이 물질을 하며 소통을 하려면 크게, 짧게, 높게 말해야 들린다. 게다가 해녀분들은 오랫동안 물질을 하는 사이에 귀에 이상이 생겨 난청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크게, 문장은 짧게 쓰면서 살아온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알지 못하고, 그냥 가파도민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마치 화를 내며 싸우는 것처럼 들린다. 조용조용 조단조단 이야기하면 될 것을 왜 저렇게 언성을 높일까 의구심을 갖게 된다. 가파도 총회를 참석해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나는 싸우는 줄 알았다. (주먹만 안 오고 갔을 뿐 정말 싸우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 도민들의 일상사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적응이 잘 안 된다.      

3.

노자의 시대에는 전쟁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전쟁터에서 무명의 용사가 영웅처럼 등장하여 맹활약을 하게 되면 장교나 장군이 될 수도 있었다. 출세하는 방법 중 평소에 군주를 잘 보필하는 문사(文士)의 길이 있었고, 전쟁에 나가 무훈을 세우는 무사(武士)의 길이 있었다. 문사의 길이나 무사의 길이나 넓지는 않았고 위험하기까지 했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따라서 용감하더라도 그 용감의 방법을 잘 선택해서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함부로 했다가는 벼락 출세를 하듯, 벼락처럼 추락하여 죽음에 도달할 수도 있었다.  


노자는 무수히 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그래서 용감하더라도 무모해서는 안 되며, 함부로 나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순리에 따라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럽게 일을 도모하는 용기를 높이 샀고, 억지로 세상을 바꾸려고 함부로 억지로 일을 도모하는 용기를 비판했다. 노자가 추구하는 도(道)는 억지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드러움이야말로 그 도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무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절제로 상대방을 살려야 일이 제대로 마무리된다. 일이 순리를 따르면 굳이 말이 필요 없고, 싸움도 필요 없으며, 애써 추가할 것도 없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하늘이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라고 여겼고, 그러한 모습을 닮아가는 것을 평생의 훈련으로 삼았다. 싸움 없는 승리, 말 없는 소통, 초청 없는 잔치, 무리 없는 사업! 한마디로 억지 없는 인생!


4.

<도덕경> 73장의 마지막 문장은 앞의 문장 전체를 압축적으로, 비유적으로 설명한 명구로 많은 문장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도 놓치지 않는다 [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이 성글다는 ‘천망회회(天網恢恢)’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냉정함과는 거리가 있다. 그물은 적당한 크기의 적당량만을 잡아들이기 위해 성글게 만들었다. 따라서 작은 물고기들은 빠져나가게 된다. 잡아야 할 물고기는 잡되, 모든 물고기를 잡지 않는다는 생명존중의 태도가 그물에 담겨 있다. (따라서 그물을 촘촘하게 엮어 작은 물고기조차 다 잡아들이려는 어부는 지탄의 대상이 된다.)


세상사에는 한도가 있다. 그 한도를 넘어설 때 무리가 따르게 되었다. 따라서 전쟁이든 재물욕이든 권력욕이든 한도를 정해야 한다. 한도를 정하지 않는 삶은 밑도 끝도 없기에 무한 괘도를 타고 죽을 때까지 자신의 삶을 소진하게 된다. 필요한 만큼만 정당한 방법에 의해 순리대로! 그것이 싸움 없이 승리하는 방법이다.          

감자와 카레의 싸움. 고양이들 끼리의 싸움은 한도가 있다. 절대로 죽기살기로 싸우지 않는다. 그런데 재네들은 지금 싸우는 걸까? 노는 걸까? 써움도 놀듯이 싸운다. 

거칠게 행동하고 함부로 용감하면 죽게 되고

부드럽게 행동하고 용감할 때 용감하면 살게 됩니다.

용감하더라도 어떤 땐 해롭고, 어떤 땐 이롭습니다.

하늘이 싫어하는 것을, 그 까닭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성인조차 매사를 어렵게 대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도는

싸우지 않고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잘 응대하고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더디게 일해서 결국 일을 잘 마무리 짓습니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도 놓치지 않습니다. (73장)  

    

勇於敢則殺, 勇於不敢則活, 此兩者或利或害,

天之所惡, 孰知其故, 是以聖人猶難之,

天之道, 不爭而善勝, 不言而善應, 不召而自來, 繟然而善謀,

天網恢恢, 疏而不失.


The Tao is always at ease.

It overcomes without competing,

answers without speaking a word,

arrives without being summoned,

accomplishes without a plan.     

Its net covers the whole universe.

And though its meshes are wide,

it doesn't let a thing slip thr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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