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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27. 2024

26. 빚

도덕경 79장

1.

고(故) 이선균이 ‘아저씨’로 나오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아이유 분)은 평생을 빚더미 위에서 살아간다.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 삼 형제와 거칠게 살아온 한 여성이 서로를 통해 삶을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소개된 이 드라마는, 한편으론 ‘빚’ 이야기다.


지안(至安)은 빚 때문에 젊은 나날을 힘겹게 살아간다. 부모의 사채빚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지안은 빚을 갚기 위해 별의별 아르바이트를 하며 빚을 갚는다. 하지만 사채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지안은 결국 불법적인 일들을 해서 이 빚을 갚아 나간다. 심지어 사채업자가 할머니를 괴롭히자 이를 말리려다 사채업자를 죽이게 된 지안은 살인자라는 오명을 쓰고, 사채업자의 아들에게 폭행을 당하기까지 한다. 빚은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행복을 앗아간다. 빚은 정상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인간관계를 왜곡시킨다. 어른에 대한 불신은 지안의 기본태도다.

그러다가 지안은 계약직 회사에서 박동훈(이선균 분)을 알게 되고, 박동훈 3형제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안고, 돕고, 위로하며 살아가는 이 3형제는 심지어 지안의 빚(고통)마저 끌어안고 해결해 주려고 노력한다. 이들과 이들 주변인의 삶을 통해 지안은 점점 변화하며 사람에게 기대고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닮아간다. 지안과 함께 사는 할머니의 죽음과 장례식을 통해 지안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깊은 깨달음을 얻고, 지난 과오를 책임지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름 그대로 '편안함에 이르게' 된다.


빚이 만들어 내는 원한(怨恨)과 빚을 갚아나가는 과정에서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해원(解怨)이 이 드라마의 주제라 할 수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명대사 중에서 지안의 할머니(손숙 분)가 지안에게 수화로 하는 대사가 있다. “ (빚을) 갚아야 돼. 행복하게 살아. 그게 갚는 거야.”     

https://youtu.be/TIqnnYLrtFc?si=EOK_N0SYtFZoguxW

2.

나는 무일푼으로 결혼하여 아내와 함께 대출하여 얻은 집값을 갚느라고 고생을 했고, 더 나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또 빚을 내서 갚았고, 고양시로 이사 와서 살다가 무리해서 대출을 끼고 집을 구입했다가, 원금과 이자를 갚는 것이 너무 힘들어 결국 집을 다시 팔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일반서민들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 집을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거나, 집을 유산으로 물려받거나, 좋은 직장을 다니며 대출빚을 갚을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거나, 사업을 해서 성공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자신의 집을 갖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상업과목을 배웠는데, 가장 이상했던 것이 부채가 증가하면 자산도 증가한다는 말이었다. 빚도 재산이라는 말인데, 회계이론 상으로는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빚은 재산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아내는 빚이 생기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해서 돈이 생기면 무엇보다 빚을 먼저 갚았다. 덕분에 우리집은 집도 없지만 빚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살림은 있는 한도 안에서 꾸려갔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도 않았다. 신용카드를 끊어버리고, 현금카드로만 살아갔다. 이제는 이러한 삶의 태도가 습관이 되어, 벌이와 씀씀이가 비슷해졌다. 물론 남은 돈이 있다면 저축을 한다. 그러나 주식이나 증권 등 일종의 투자상품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자본주의 시대에 살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중 누구도 재산축적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3.

가파도에 와서 매표원으로 일하면서 벌어들인 돈 중 일정액을 집으로 보내고, 남은 돈으로 홀로 살림을 꾸리고, 그래도 돈이 남으면 저축을 한다. 올해 안에 게스트 하우스도 만들고 고양이 도서관도 세우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데, 모이는 돈의 액수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 책이라도 써서 종잣돈이라도 마련해야 하나? 고민하다가도 빚 없는 사는 삶이 어딘데하며 안도하게 된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된다.     


갚아야 할 이자가 수입보다 많은 사람들도 넘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빚 때문에 삶을 포기하고 목숨을 끊기도 한다. 불어나는 빚은 삶의 빛을 꺼버린다. 어둠이 깔린다. 희망을 발견하기 어렵게 된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찾기 힘들고, 일한다고 하더라도 영혼을 털어가며 일하다가 지쳐 쓰러지는 삶이 있다.  

    

4.

노자의 시대에도 빚은 사회적 문제였다. 작은 빚이 이자가 불어 가산을 탕진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빚 문서 하나 잘못 써가지고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빚 때문에 자식을 팔고, 빚 때문에 야반도주를 하고, 빚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빚 때문에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임시변통으로 얻은 빚이 영구고통으로 삶을 괴롭혔다. 빚으로 먹고사는 빚쟁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빚독촉을 해왔다. 하도 괴롭혀 원한이 쌓이게 되었다. 원한은 원만히 풀리지 않았다. 범죄가 늘어났다. 가끔 상대방의 사정을 헤아려 빚을 탕감하거나 줄여주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 선행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빚쟁이들은 거머리처럼 붙어 죽을 때까지 괴롭혔다.


노자가 <도덕경> 81장 중 하나를 떼어내어 빚과 원한의 문제를 다룬 것은 이 문제에 노자가 민감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민들의 안정적 생활은 노자의 최대 관심사 중에 하나였다. 권력자를 손가락질하고 지식인들을 비판한 이유도, 자연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서민들의 빈한한 삶에 대한 동정심이 배경이었다. 함포고복(含哺鼓腹),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는 포한(抱恨) 없이 편안한 삶은 불가능한가? 빚이 없는 사회는 없겠지만, 서민의 사정을 잘 알아 이를 해결해 줄 선인(善人)은 과연 없는가? 분명 편애 없는 하늘일지라도 이 선인만은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도덕경> 79장은 그런 마음을 담아 썼을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 선한 사람은 있다는 믿음과 더불어 우리도 선하게 살자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그림.

깊은 원한은 풀어도 반드시 앙금이 남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입니까?

성인은 빚 문서를 지니고 있어도

빚 독촉을 하지 않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사정을 잘 살핍니다만,

덕이 없는 놈은 그저 닦달하여 빚을 받아내려 합니다.

하늘의 도에는 편애하지 않고,

언제나 선한 사람과 함께 합니다.     


和大怨, 必有餘怨, 安可以爲善,

是以聖人執左契, 而不責於人, 有德司契, 無德司徹,

天道無親, 常與善人.


영역(英譯)은 빚 이야기가 없다.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잘못을 기회삼아 스스로 교정하는 이야기로 바꾸어 버렸다. 그리하여 당대의 구체적인 생활상이 사라져 버렸다. 이 점은 아쉽다고 생각한다.   

  

Failure is an opportunity.

If you blame someone else,

there is no end to the blame.     

Therefore the Master

fulfills her own obligations

and corrects her own mistakes.

She does what she needs to do

and demands nothing of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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