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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28. 2024

27. 나눔

도덕경 81장

1.

당신 생애의 마지막 한 해가 남았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쓰고 있는 책의 마지막 한 페이지가 남았다면 무슨 말을 쓰겠는가? 쉬고 있는 호흡의 마지막 한 숨만 남았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그 마지막을 생각해 본다. 마지막 한 마디, 마지막 한 문장, 마지막 한 동작, 마지막 한 눈길.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쓰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볼 것인가?


전설에 따르면 함곡관을 지나는 노자를 함곡관지기 관윤이 붙잡고 글을 남겨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노자는 함곡관에 머물며 며칠 만에 5000천여 문자를 썼다. 그것이 바로 <도덕경>이다. 자 상상해 보자. 80장까지 쓰고 이제 마지막 81장을 쓸 차례다. 노자는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물론 이러한 상상은 역사적, 문헌학적 상상은 아니고 문학적 상상이다. 역사적으로, 문헌학적으로 81장이 맨 마지막이라는 보장은 없으니.) 마지막 먹물을 붓에 묻히고 마지막 한 장을 채우는 노자를 상상해 본다. 그동안 썼던 글을 다시 한번 읽어봤을까? 쓰고 나서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아직도 못다 한 말이 있던가? 비문(非文)을 고쳤을까? 미문(美文)을 지웠을까? 상상은 끝없이 달린다.     

함곡관에서 관윤에게 우주의 원리와 삶의 태도를 설명하는 노자를 그린 부조작품

2.

글이 한창 잘 써질 때가 있었다. 글을 한창 써야 할 때가 있었다. 두려움 없이 글을 썼다. 의무적으로 글을 썼다. 반성하지 않고 글을 썼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젊었을 적 경찰서에서 압수수색을 당했을 때  쏟아져 나온 내 문건들이 하나하나 나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었던 것처럼, 내가 쓰고 있는 글들이 나에게 올가미가 되지 않을까? 이대로 써도 괜찮은가? 밤새 쓰고 유치하고 창피해 찢었던 연애편지처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써놓은 글들을 보면 유치한 것도 있고 괜찮은 것도 있고, 지저분한 것도 있고 깔끔한 것도 있다. 복잡하게 꼬아놓은 글, 단순명료하게  적시한 글, 추상적인 글, 세부적인 글, 그냥 쓴 글, 쓰다만 글, 지우고 싶은 글, 보태고 싶은 글, 미완의 글, 초과된 글..,

한 사람이 쓴 글인데도 수준도 다르고 문체도 다르고  길이도 다르고, 호흡도 다르다. 이 글을 내가 썼나 갸우뚱하게 만드는 글도 있고 영락없이 내 글임이 확인되는 글도 있다. 낯설기도 하고 낯익기도 한 내 글을 읽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3.

반 평생을 싸우는 글을 썼다.  적과 아를 가르고 투쟁하고 비판하고 타도하고 무력화시키고 절멸시키자고 외쳤다. 성마르게 주장하고 가차 없이 가르고 용서 없이 싸우자고 글을 썼다. 그런 글을 쓸 때 나도 찢기고 베이고 멍들고 곪아갔다. 양날의 검. 한쪽은 상대방에게 휘둘렀으나 다른 한쪽은 나를 향해 휘둘렸다. 상처 입고 부상당한 몸으로 중년까지 기어 왔다.

가파도에 내려와 나도 상대방도 다치지 않는 글을 쓰고 싶었다. 꿰매고 감싸고 바르고 감는 글. 병든 영혼을 낫게 하는 글, 지친 다리를 쉬게 하는 글, 거친 호흡을 잠재우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다가도 깊은 곳에 분노가 치솟아 균형을 잃고 기우뚱 기울어지는 글을 쓴 적도 있다. 싸움 없는 평화가 가능하겠냐고 눈 붉히는 글도 썼다. 미친 운전수를 끌어내려야지 사고로 다치는 시민을 구할 수 있다고, 그러니 몽둥이를 들고 나서자고 쓴 적도 있다. 나이가 먹어도 피가 끓었다.
그 피를 삭히며 다시 글을 쓰기도 했다. 아는 것을 지우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로! 지식인을 향한 글이 아니라 서민들도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정치적 포지션을 지우고 자연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일상으로 들어가 일상을 파고드는 글을 쓰고 싶었다.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 같다. 이 길로 가고 싶다.

4.

노자의 글을 읽어보면 꾸밈이 없다. 문명을 버리고 자연을 택했다. 아름다움을 버리고 진실을 택했다. 달변을 버리고 어눌을 택했다. 박식을 버리고 슬기를 택했다. 재산축적을 버리고 나눔을 택했다. 그럼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자족이 주는 즐거움에 만족했다. 전쟁을 버리고 평화를 택했다. 싸움을 버리고 일상을 택했다. 남과 다투지 않았기에 이로움을 줄 수 있었다. 자신의 저술을 훑어보고 나서 그는 마지막 페이지를 이렇게 썼다. 그리고 마침표를 찍었다. 내가 줄 것은 다 주었다. 이제는 여러분 차례다!


          

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은 어눌하고

달변가는 좋지 않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슬기롭지 않습니다.     

성인은 자신을 위해 쌓아두지 않고

남에게 베푸니 더 많이 갖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었는데 자신이 더욱 풍요롭게 됩니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하고, 해치지 않습니다.

성인의 도는 주고, 다투지 않습니다.      


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辯, 辯者不善.

知者不博, 博者不知. 聖人不積, 旣以爲人,

己愈有, 旣以與人, 己愈多.

天之道, 利而不害, 聖人之道, 爲而不爭.


True words aren't eloquent;

eloquent words aren't true.

Wise men don't need to prove their point;

men who need to prove their point aren't wise.     

The Master has no possessions.

The more he does for others,

the happier he is.

The more he gives to others,

the wealthier he is.     

The Tao nourishes by not forcing.

By not dominating, the Master le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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