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중에 하나가 직립보행이다. 두 발로 걷는 자, 그것이 인간이다. 두 (뒷) 발로 걷기 시작하니, 두 앞발(팔)이 자유를 얻었다. 그 두 팔로 도구를 제작하고, 발과 다른 용도로 팔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걷기에서 자유로워진 팔에 붙은 손은 더욱 정교하고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진화했다. 그리고 두 발로 걸으니 척추가 세로로 세워지며, 목뼈와 머리는 중력을 견디도록 진화했다. 그리고 머리에 붙은 이목구비도 변화했을 뿐 아니라, 머릿속의 뇌도 진화하여, 언어를 정교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입은 그 언어를 소리로 표현하기 적합하도록 진화했다. 그리고 문자의 발명과 더불어 문자를 기록하는 손의 기능이 더 해졌다. 이 모든 진화의 시작은 네 발이 아니라 두 발로 걷고 뛸 수 있는 진화와 적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2.
인간의 두 발을 대신할 수 있는 가마, 마차, 자동차가 발명되자 소수의 인간은 걷기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아직까지도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인 이동수단은 발이다. 발로 걷고 뛰면서 이동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도 걷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올림픽의 육상경기도 대부분 이 걷기와 뛰기 동작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즘은 걷기가 이동의 수단이 아니라 건강의 수단으로까지 확장되었다. 나 같이 차 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삼보승차(三步乘車)를 외치며 걷기를 거부했지만, 요즘은 부러 차를 버리고 걷기를 택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다. 심지어는 맨땅을 맨발로 걷는 어씽(earthing)이 유행이다. 걷기가 얼마나 건강에 좋은지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걷는 것이 최고의 약”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가파도와 와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걷기를 할 수밖에 없다. 섬 주위를 도는 주요 이동수단은 발과 자전거다. 아침에 바쁠 때는 자전거를 타고, 저녁에 한가할 때는 걷는다. 별다른 헬스 운동을 하지 않는데도 체중이 준 것은 모두 자전거 타기와 걷기 덕분인 듯하다. 섬에 자동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영업용이거나 짐운반용으로 주로 쓰인다.
3.
걷기는 속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걷기는 육체가 낼 수 있는 한도 안에서만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자전거만 타도 걸을 때 볼 수 있는 풍경의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일부러 천천히 걷는 행위는 사물을 자세히 깊이 볼 수 있게 하고, 그러한 경험은 사유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걷기는 삶의 태도와도 관련성이 깊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걸으면서 사유하기(철학하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일상에서 실천하여 그의 학파를 소요학파(逍遙學派)라 부른다.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철학자들 대부분 교실이나 연구실에서 철학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걸으며 철학했다. 가운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발걸음을 보라. 걷기다.
현대철학자 니체도 산책을 통해 그의 철학을 다듬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걷기를 통해 사유한 철학의 산물이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그의 소설 《느림》에서 속도의 엑스타시에 취해 빠르게 질주하는 자동차의 속도와는 다른 한량의 삶의 태도를 그리워하며 이렇게 외친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니체의 책과 니체의 걷기는 깊은 친연성이 있다. 그의 철학은 걷기의 철학이다. 그는 서재에 앉아서 머리를 굴려 책을 쓰는 작가들을 경멸했다.
4.
노자의 《도덕경》읽기는 이 걷기와 느림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일단 작품의 형식이 시(詩) 임으로 느리게 읽어야 제맛이다. 산문이 아닌 운문의 경우에는 라임을 맞춰 읽어야 하기 때문에 리듬도 필요하다. 알레그로가 아니라 안단테 안단테다. 더군다나 그의 철학 정신이 사유의 느림을 요구한다. 빠르게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픈 자에게 노자는 디딤돌이 아니라 장애물이다. 노자는 천천히 살기를 요구한다. 거친 숨을 가리 앉히고 고요히 들숨과 날숨이 반복되기를 원한다. 한꺼번에 모든 일을 후다닥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하나하나 작게 쪼개서 정성을 다해서 조심조심 일에 임하기를 기대한다.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자는 큰 일을 맡길 수 있지만, 큰일을 이루겠다면서 디테일에 약한 자들은 결국 거의 이루었다 하더라도 실패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일상사(日常事)가 성사(聖事)다. 서두르지 마라. 높은 건물도 한 줌 흙에서 시작되었고, 천릿길도 한 걸음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도덕경》 64장은 느리게 차근차근 정성껏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