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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20. 2024

21. 물

도덕경 78장

1.

서울 토박이로 태어나 중구 신당동 산동네 중턱에 살았으니 바다를 볼 기회는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산은 남산이었다. 동네 언덕과 남산을 제집 드나들 듯이 싸돌아 다니며 놀았다. 지금도 어릴 적 놀았던 골목을 눈만 감으면 훤하게 그릴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재계발의 바람이 불어, 이제 내 고향 동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촌이 되었다.

결혼하여 한양대학 근처 철길을 따라 들어가는 동네에 처음으로 단칸방 신혼집을 마련하였다. 주변에서 가장 먼저 결혼한 집이라, 후배들이 제집 드나들 듯이 방문했다. 집에 소주병이 넘쳐났다. 결혼기념일에는 한강으로 가서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을 타고 남산 근처 장충단공원에서 원조족발을 후배들과 함께 먹는 것으로 결혼기념일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희안한 결혼기념일이었다. 그나마 서울에는 커다란 한강이 흐르고 있어 가끔 답답할 때에는 강가로 가기도 했다.     

바다를 처음 가본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보충수업을 땡땡이치고 1박 2일로 오이도로 놀러 갔을 때였다. 서해안의 섬이라 바닷물은 빠지고 갯벌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저녁이 되자 밀물을 따라 섬사람들이 갯벌을 따라 썰매(?)를 저어왔다. 갯벌에서 얻을 수 있는 맛이니, 조개니, 게 등속을 싣고 오는 썰매였다. 해녀분들에게 맛을 한 바가지 사서 삶아 까먹었다. 서녘하늘에 붉은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면, 사방이 붉은색으로 물드는 노을을 보면서, 바다가 참 좋다고 감탄했다.

오이도의 노을(인터넷에서 퍼옴)

이후로 가족들이나 지인들과 서해안과 동해안 해수욕장으로 놀라가서 며칠 지낸 적이 있었지만, 바다에 대한 감흥은 오이도의 첫 경험만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 작년도에 우연치 않은 기회에 가파도에 머물면서, 실컷 바다를 보았다. 일출과 일몰 역시 마찬가지. 보는 것마다 명장면이었고, 찍는 것마다 명작품이었다. 기계(카메라)로는 차마 담아낼 수 없는 놀라운 바닷풍경을 망막에 담았다. 그게 그리 좋았던지 아예 1년 계약을 맺고 가파도 매표원이 되었으니 나도 물의 사람이 된 것일까.     


2.

아침마다 바다를 보며 출근하고, 저녁마다 바다를 보며 퇴근한다. 바다는 변화무쌍하여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세기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가다 왔다. 흰 갈퀴머리를 휘날리며 사자 떼들이 달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은빛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춤을 추는 것 같기고 하고, 푸른색 물감을 풀어놓은 거대한 캠퍼스 같기도 하고, 검은색 망토를 두른 망자들이 행진 같기도 했다.


흐르고, 휘감고, 들어가고, 나오고, 부딪치고, 부서지고, 날아가고, 떨어졌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것처럼 움직였고, 이 움직임만이 영원하다고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바다는 우울을 닮았고, 명랑을 닮았고, 탄생과 죽음을 닮았다. 바닷가 바위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갈매기들은 이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비가 오는 바다는 마치 현란한 드러머가 채를 휘두르며 연주하는 것 같았다. 수천 개의 드럼이 물소리로 울려 퍼졌다. 풍랑주의보가 떨어지면 사위가 조용했지만, 바다는 한을 품은 여인들이 통곡을 하며 미친 듯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무섭고 놀랍고 신비했다. 바다는 늘 상상 이상의 모습과 소리로 나에게 다가왔다.


3.

공자는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智者樂水 仁者樂山].”라고 말했다. 덧붙여 말하기를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智者動 仁者靜] 지혜로운 사람은 즐기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 [智者樂 仁者壽]”라고 했다. 공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거의 평생을 주유천하[周遊天下]했고, 음악을 즐기고 함께 놀기를 좋아했으니 지혜로운 사람인가? 아니면 조용히 명상하고, 오래 살았으니 어진 사람인가? 아마 둘 다 아니었을까? 어질고 지혜로운 자!


노자는? 차라리 노자야말로 조용히 물러나 고요히 살았으니, 참으로 어진 사람이 아닌가? 그럼에도 노자의 글을 보면 산에 대한 예찬은 없고, 물에 대한 예찬은 넘쳐난다. 노자는 물을 도에 비유할 정도였다. 물은 하늘과 땅의 근원이라 말했고(6장), 최고의 선함은 물과 같다고 예찬하며 도에 가깝다고(8장) 말한다. 가히 ‘물의 사상가’라 할만하다.  

세기의 무술가이자 영화배우인 이소룡은 노자를 전공했다. 노자의 <도덕경>을 자신의 철학으로 다듬었다. 이소룡 역시 물의 무도가가 되었다. 영춘권을 배웠지만, 영춘권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무도가들의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녹여 절권도를 만들었다. 거기에는 권투, 태권도, 가라데, 심지어 탱고춤의 유연한 스텝까지 녹아들어 갔다. “물은 꽃병에 담기면 꽃병 모양으로 변하고, 찻주전자에 들어가면 찻주전자의 모양으로 바뀐다. 고정되지 않고 유연하게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물이 되어라.”라고 이소룡은 한 TV인터뷰에서 자신의 무술철학을 말한 적 있다.


노자는 이 물의 약함과 유연함, 부드러움이야말로 세상을 다스리는 원리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고 말했다. 온갖 더러운 것을 품고 이를 정화시키는 물처럼 지도자는 세상의 궂은일을 도맡아야 세상의 임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도덕경> 78장에 이렇게 써놓았다.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단단하고 힘센 것을 물리치는 데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습니다.

이를 대신할 것은 없습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기는 것

세상 사람 모르는 이 없지만

실천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성인은 말합니다.

“나라의 온갖 더러운 일을 받아내야만

사직의 주인이라 말할 수 있다.

나라의 온갖 궂은일을 받아내야만

세상의 임금이라 말할 수 있다.”

바른말은 거짓처럼 들립니다.     


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 莫之能勝, 以其無以易之.

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 是以聖人云. 受國之垢, 是謂社稷主. 受國不祥, 是謂天下王. 正言若反.


Nothing in the world

is as soft and yielding as water.

Yet for dissolving the hard and inflexible,

nothing can surpass it.     

The soft overcomes the hard;

the gentle overcomes the rigid.

Everyone knows this is true,

but few can put it into prac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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