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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l 09. 2024

오늘 : 더위

2024. 7. 9.

1.

더위가 한창이다. 섬의 더위는 육지의 더위와는 양상이 다르다. 섬은 바다 때문에 항상 습도가 높다. 그래서 더위도 눅눅하고 축축하게 덥다. 게다가 햇빛이 직접 쏟아지기 때문에 따갑게 덥다. 가파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평평한 섬이다. 자연 상태로는 비와 바람과 햇빛을 피할 곳이 없다. 해풍으로 나무가 높게 자라지 못한다. 자연히 그늘이 없다. 그늘이 없으니 인공적인 그늘을 만들어 숨어 들어가야 한다.

바닷가를 거닐 때 썬크림을 바르고 양산을 펴야 한다. 비가 오거나 구름이 잔뜩 낀 날에는 햇빛은 피할 수 있지만 바람과 습도는 피할 수 없다. 눅눅하고 축축하게 덥다가 바람 한 점 훅 불어와 더위를 잠시 싹 거둬간다. 그 맛에 산책을 하는 사람도 있다.

2.

제주도는 여름만 나면 지낼만하다는 말을 들었다. 가파도는 그 말에 곱하기 4 정도는 되는 것 같다. 7월부터 시작된 더위는 8월에 극성을 부리다가 9월에 물러간다고 한다. 7월 더위가 못 견디겠는데, (작년도 7월은 어떻게 견뎠을까? 아, 집도 크고 에어컨과 제습기가 있었구나.) 8월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벌써부터 더위를 피할 방법을 이리저리 궁리해 본다. 여름 동안만이라도 펜션에 방 하나 잡아놓고 더위를 피할까? (비용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터미널에서 텐트 하나 쳐놓고 지낼까? (무단침입으로 신고가 들어갈 수 있겠구나.) 아니면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모기장을 쳐놓고 그 속에서 지낼까? (아침 이슬은 어떡하지?) 생각하고 생각해도 묘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3.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말하는데, 더위는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피할 수 없으면 견뎌라? 견뎌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대책도 없이 대책 없는 더위를 맞아야 하는 계절이 왔다. 옛날 어르신들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기껏해야 그늘이 짙은 산속 계곡에 숨어들어 탁족이나 즐겼을 법 한데, 여기는 산도 없고 계곡도 없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내 근무처가 가파도에서 제일 넓고 시원한 곳이라는 점이다. 관광을 온 사람들도 더위에는 터미널로 들어와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배짱 좋은 사람은 의자에 드러누워 잠시 잠을 청하기도 한다. 물론 제재를 받는다.) 이 더위에 나는 낮은 이기고(?) 밤은 지는 게임을 하고 있다. 이 낮이밤져 게임은 부부나 연인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더위와도 같은 게임을 한다. 그리고 내가 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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