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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l 10. 2024

오늘 : 매표원

2024. 7. 10.

1.

가파도 매표원이 된 지 8개월이 되어 간다. 일 년의 2/3가 지났다. 겨울과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한다. 겨울에 한가하고 여름에 - 특히 청보리 축제기간에 - 정신없이 바쁘고, 여름이 되니 다시 한가(?)하다. 이번 달은 월급이 반토막이 날 것 같다. 일한 날보다 하지 않은 날이 더 많다. 그렇다고 여유롭게 지냈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정기적인 휴일인 금요일을 빼고 거의 일주일 내내 일했다. 환갑잔치로 일산에 올라갔다 온 5일간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생활을 가파도에 묶여 살아야 했다. 휴일인 금요일은 더 분주했다. 첫배를 근무하고, 오전에 수업하고, 오후에 나가 장보고 일 보고 막배로 돌아오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매표원으로 산다는 것은 관광객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주민이 나가면 나가는 대로, 아무도 나가지 않았어도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매번 상황이 바뀌면 바뀐 상황에 맞춰 근무태세를 달리해야 한다. 기본은 친절이다. 가파도를 찾아오는 관광객이나, 가파도에 살고 있는 주민이나 최대한 편리를 제공한다. 단순노동이지만 감정노동이다. 기계조작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마음조작(?)이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내가 기분이 가라앉아 있으면, 금세 티가 난다. 내가 힘들어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 가파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겨 다시 찾아오게 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2.

생각해 보면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쉬더라도 항상 날씨를 확인하고, 운항시간을 체크했다. 정상적으로 출근하여 배 한 번만 띄우고 갑자기 쉬게 된 적도 있었고, 오전만 근무하고 오후에는 배가 끊긴 적도 있었다. 풍랑주의보가 떠도 언제 해제될지 몰라 5분 대기조처럼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기상을 확인하고, 운항상황을 확인했더니 풍랑주의보로 전차 결항으로 나왔다. 하루 종일 쉬는(?) 날이다. 아침밥을 느긋하게 먹고, 컴퓨터를 켜고 8월에 출간되는 책의 1교 원고를 검토하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어 사무장과 함께 라면에 밥을 말아먹고 있는데, 풍랑주의보가 일찍 해제되어 오후부터 출항한다 한다. 서둘러 밥을 먹고, 급히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사무장 차에 몸을 싣고 터미널로 향한다. 터미널 문을 열고, 불을 켜고, 에어컨을 켜고, 컴퓨터를 틀고, 매표할 준비를 한다.

2시 배를 확인하니 들어오는 손님이 1명, 가파도에서 나가는 주민이 7명이다. 294명 정원 페리호를 전세 낸 격이다. 정기여객선이라 배가 뜰 수 있는 상황에서는 배를 띄우는 것을 원칙으로 하니, 선사 차원에서 적자가 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대로라면 오후 3번의 배가 떠도 이용객은 20명도 안 될 것 같다. 나는 대합실 매표소에 앉아 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 그것이 매표원이 할 일이니까.


3.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가 그렇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사람도 있어야 세상이 굴러간다. 가장 밑에는 잘 보이지도 않고 일에 티도 나지 않는 단순노동을 묵묵히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밥을 짓고, 가게 문을 열고, 공장의 불을 켜고, 차에 시동을 켜는 사람들이 세상을 돌린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보이지 않는 빙산 덩어리가 훨씬 크다. 그리고 그 큰 덩어리가 없다면 빙산은 녹아 없어진다. 평생을 눈에 띄는 일을 하며 살다가, 환갑이 되어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장소를 옮기고 살아간다. 비범이 아니라 평범이 훨씬 어려운 것임을 살면서 느낀다. 그러니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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