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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l 22. 2024

오늘 : 김민기

2024. 7. 22.

1.

김민기가 이 세상을 떠났다. 내 젊은 날의 우상이었던 사람. 공연예술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사람. 암흑기에 위로와 희망을 주었던 사람. 대학시절 그가 만든 뮤지컬을 보며, 나도 뮤지컬 대본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가졌다. 교회에서 공연되기는 했지만 <꽃을 사랑한 누에>와 <신의 이름으로 쫓겨난 신> 등의 뮤지컬을 만들어 연출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라는 다큐로 다시 주목을 받았던 김민기가 오늘 73세로 별세했다.


2.

나에게 김민기는 늙지 않은 현역이었다. 그를 개인적으로 만해문학관에서 작업할 때 잠시 본 것이 다다. 워낙 우러러보는 존재였기에 마주쳤을 때 가볍게 인사만 나누고 말았던 것이 지금 후회된다. 꽤 오랜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있었는데, 적극적으로 아는 체하고 차라도 한 잔 나눌걸. 그때 내가 묵었던 곳에 정태춘 박은옥 팀도 와서 술 한 잔 하며 하룻밤을 지새우며 놀았었는데, 그때 초대라도 할걸.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그 또한 과욕이란 생각에 후회와 아쉬움을 접는다. 그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살았던 행운을 맛보았으니.


3.

잘 가시라. 얼마나 오래 살았냐 보다 어떻게 살았냐가 더욱 기억에 남는 법이니, 그대는 찬란한 별로 대한민국의 역사에 남으리라. 그대와 동시대에 살아서 행복했다. 그대로 인해 삶의 고비마다 소주를 마시며 그대의 노래를 들으며 부르며 잘 지냈다. 아침에 부고 소식을 듣고 화들짝 놀랐으나, 이제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며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봉우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 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 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고...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 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 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 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https://youtu.be/3DMQc76GfzQ?si=ClijTnJYekEVCa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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