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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l 18. 2024

오늘 : 수곡댁 식구들 100년 이야기

2024. 7. 18.

친구가 자기네 집안 이야기를 책으로 엮고 싶다며 책 속에 들어갈 글 한 편을 써달라고 부탁해 왔다. 이 친구 이름은 김지동. 내가 고양시에서 도서관을 폐관하고 1년 넘게 얹혀살았던 집안에 남주인이다. 이 친구 덕분에 가파도로 여행을 오고, 내친김에 가파도 매표원까지 되었으니, 인연이라면 참으로 고마운 인연이다. 이 친구의 부탁이니 흔쾌히 그러마 했다. 그리고 보내온 파일을 보니 참으로 아름다운 가족이야기이다. 갈내에서 가족을 형성하고 태백으로, 인천으로, 도시들로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의 역사가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는 책자를 읽으며, 책자 속에 사진을 보며 참으로 부러웠다. 그래서 이 책자에 들어갈 짧은 글 한편을 써서 보냈다.  <감탄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어차피 비매품이라 독자들이 읽을 수 없으니, 기록보관차원에서 여기에 글을 남긴다.

1.

안녕하세요. 4대 넷째 집 차남 김지동의 친구 김경윤입니다. 고양시에서 교회를 다니며 잠깐 맺은 인연으로 지동이네 집에서 1년 넘게 얹혀살다가, 다시 지동이가 가파도에 한달살이 하러 갔을 때 따라 내려가서 이제는 아예 가파도 매표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서울시 신당동 출생으로 40년 넘게 서울에 살다가 고양시로 이사 와서 두 아들을 고양시에서 키웠습니다. 고양시에서는 입시학원 논술강사를 하며 밥벌이를 하다가 심경에 변화가 생겨 접고, 자유청소년도서관을 설립하여 고양시민과 책 읽고 글 쓰며 지냈습니다. 그 시기 책도 정력적으로 써서 이제는 작가라는 허명을 가지고 있는데요. 코로나 사태를 맞아 10년 넘게 운영한 도서관을 느닷없이 접게 되어, 갈 곳 몰라 방황하던 나를 지동이가 흔쾌히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해서 2층에 방 한 칸을 얻어 책보관소 겸 작업실로 쓰며 지냈습니다. 가파도로 내려온 지 1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제 책은 아직도 고스란히 지동이네 집에 있네요. 지동이는 참 배려심 많고 고마운 친구입니다.  

   

2.

그런 친구 지동이가 자기네 집안 100년사를 책으로 발간하겠다며 나에게 파일을 보내왔습니다. 《수곡댁 식구들 100년 이야기》라는 제목의 파일이었는데, 그 규모와 숫자가, 와우, 대단했습니다. 부러웠고요. 김삿갓, 김좌진, 김구라 등의 이름이 나와서 반갑기도 했습니다. 갈래에서 태백으로, 다시 인천에서 도시로 뻗어나가는 수곡댁 4대의 이야기를 읽으며, 사진을 보며 갑자기 머릿속에서 과거 우리집의 모습이 흑백사진처럼 떠오르는 신기한 경험도 했습니다. 보통 이런 종류의 책은 누군가 유명해진 사람이 있을 때 자신의 배경을 돋보이게 만들거나, 자기네 집안이 위대한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 만드는 게 관례인데, 제 상상을 벗어난 아주 멋진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평범한 집안의 아주 평범한 이야기로도 책이 나올 수 있다는 발상부터가 아주 멋진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3.

《수곡댁 식구들 100년 이야기》를 읽으며 4대가 겪은 온갖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담담하게 저술하는 태도도 멋있었고, 갈래의 유적과 역사기행도 재밌었지만, 특히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인천시에 있는 영화관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왜냐, 내가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영화광을 자처하며 휴일이 되면 뻔질나게 인천으로 영화를 보러 다녔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인천으로 가서 오전에 영화 한 편을 보고, 짜장면 먹고, 오후에 다른 영화를 한 편 보는 것이 저의 루틴이었거든요. 그때의 추억과 책에 나오는 영화관과 겹치면서 느닷없는 즐거움을 맛보았더랍니다. 

수곡댁 식구들의 이야기는 사진 반 글 반으로 엮어졌는데, 친구네 집에 가서 오래된 사진첩을 넘겨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 같이 소박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네 민중사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제례의식을 읽을 때는 이제 점점 잊혀 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후손에게 알리고픈 어른들의 마음도 읽혔습니다. 이 책을 읽고 수곡댁 후손들이 제사를 지낼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래도 가까운 과거에 이러한 방식으로 조상과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다시 갈래에 집을 마련하는 이야기는 정말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가족해체의 역사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 현대사를 뒤집는 듯, 가족을 거슬러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함께 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멋진 집안이구나 부럽기도 했고요.      


4.

저는 2부 수곡댁 Now! 에서 넷째 집을 소개하는 대목에 눈길을 오래 머무를 수밖에 없었는데요. 바로 내 친구 지동이네 집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딸 없이 아들만 셋 낳은 어머니의 이야기, 자식들이 운동권이 되어 부모를 속 썩인 이야기, 그리고 힘겨운 삶을 이어가다가 돌아가신 이야기까지 담담하게 서술된 연대기를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제 이야기를 얹혀보자면,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하숙집을 전전하며 살아가, 외국에 ‘산업역군’으로 취업 나갔던 아버지가 불치의 병을 안고 돌아오셔서 고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힘겹게 대학을 다니고, 운동권이 되어 감옥살이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저의 모습이 엄청 겹쳐지더라고요. 살아가는 게 이리도 힘겹구나. 부모의 세대든, 내 세대든, 그리고 내 자식의 세대도! 뭐, 이런 생각이 겹쳐지면서 아련해지고 애틋해지고 조금은 쓸쓸해졌습니다. 남의 집안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감정을 경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5.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가족해체의 역사입니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대가족으로 살았던 시대를 지나, 도시로 이주해서 노동자로 살아가며 핵가족으로 살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각자도생의 일인가족 시대에 도달했습니다. 이 가족해체의 역사는 불가역일 듯합니다. 점점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고, 홀로 죽는 사람도 많아지겠지요. 고독생(孤獨生), 고독사(孤獨死)! 

그 해체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속도를 늦출 수 있지는 않을까요? 저는 《수곡댁 식구들 100년 이야기》를 읽으며 그 희망의 단초를 발견합니다. 3부의 젊은이들의 대담을 읽으면서, 아아, 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기억에 남아있는 한, 가족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족들이 모여 지내고픈 윗 세대의 노력을 버리지 않는다면, 설령 자주 모이지는 못하더라도 가족이 완전히 해체되지는 않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가족의 역사를 삶으로도 기억으로도 거의 잃어버린, 그래서 삶의 역사가 납작해져 버린 저는 지동이네와 연결된 수곡댁 가족들이 부럽고 부럽습니다. 부디 아직 살아계신 모든 식구들이 이 소중한 인연을 오래오래 유지하시기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이 장사도 안 되는 가족이야기를 기꺼이 십시일반의 노력으로 엮어낸 수곡댁 가족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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