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31.
예수의 관심은 '종교'가 아니다. 예수의 관심은 바로 '생명'이며 '함께-잘-살아감의 길'이다. '모든 사람'이 그가 누구든 상관없이 존엄성을 지닌 평등한 존재로 '함께' 살아가는 정의로운 세계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그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계"(아모스 5:24)는 '늑대, 어린양, 표범, 어린 염소, 송아지, 어린 사자, 어린아이, 암소, 곰, 사자, 젖 먹는 아기, 독사' 등으로 상징되는 극도의 '다름(alterity)'을 지닌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해를 끼치거나 파괴하는 것이 모두 사라지는 세계(이사야서 11:5~9)다. 그러한 '불가능성에의 세계', '도래한 세계'가 바로 '신의 나라'라고 상징될 수 있다.
예수의 '신의 나라'는 이 땅을 벗어난 어떤 초월적인 세상 또는 죽음 후에 영생을 보장하는 그런 '천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신의 나라'란 예수의 평등과 정의의 철학이 온전히 실현되는 세계를 의미하는 심오한 은유이며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신의 나라가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질 때, 이제 그 누구도 "더 이상 외국인이나 이방인이 아니며, 신의 사람들과 신의 집에 거주하는 이들과 같은 동료 시민"(에베소서 2:19)이 되는 세계가 될 것이다. (294~295쪽)
기독교인에게 '예수'는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비기독교인에게도 '예수'는 문제다. 지구상의 3분의 1이 기독교인이고, 기독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지낸다. 유럽과 미국은 기독교를 배경으로 해야만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지금도 기독교는 문제다. 전쟁을 일으키면서 '성전'이란 이름으로 하느님을 자신의 편으로 세운다. 난민을 이슬람을 믿는다는 이유로 수용반대하고, 동성애자를 비기독교적이라고 반대한다. 과거에 기독교는 역사를 앞당기는 역할을 한 적도 있지만, 현재 기독교는 역사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기독교에 대해 새로운 의문이 던져지고, 새로운 탐구가 시작된다.
기독교를 생각하면 그 출발점이 '예수'이기에 당연히 '예수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된다. 문제는 예수 당시의 예수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 예수의 행적과 말을 기록한 사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도 예수 사후에 예수를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자료와 증언을 듣고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 자체를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된다. 종교적 상상력, 역사적 상상력, 과학적 상상력, 인문학적 상상력 등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예수가 복원된다. (나도 인문학적 관점에서 <제정신으로 읽는 예수>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예수는 당시에는 랍비(선생)로, 예수 사후에는 그리스도(메시아, 구세주)로, 현대에 와서는 '선생'으로, 장모님에게는 '애인'으로 대접받는다. 나는 내 책에서 예수를 '지저스 아미고(Jesaus Amigo)', '친구'라 했다.
이번에 강남순 선생은 예수를 '철학자'로 해석한다. 물론 의도와 목적이 있다. 직접 듣자.
‘철학자 예수’라는 개념은 이 땅에 몸담고 살았던 예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먹고, 그들 삶의 문제에 개입하고 연대하며 살았던 예수의 삶과 그 가르침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조명하고 되새기고자 하는 ‘나의 시도와 해석’이다. 2천여 년 동안 제도화된 종교인 기독교의 울타리 안에서 ‘길들여진 예수(domesticated Jesus)’의 장막을 걷어내고, 그 어떤 경계도 긋지 않고 자유롭게 사람들과 ‘함께의 삶’을 살았던 예수, 무조건적 사랑과 용서와 환대를 가르쳐준 예수를 새롭게 만나고자 하는 것이 내가 예수를 ‘철학자’라고 호명하게 된 의도다. (39쪽)
<철학자 예수>의 부제는 '종교로부터 예수 구하기'다. 종교적 예수도 중요하지만, 종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예수를 '새롭게' 만나게 하고 싶은 마음을 책에 담았다. 새롭게 만나야 할 예수는 사랑, 용서, 환대, 평등과 정의의 철학자이자 실천가이다. 저자는 성서뿐만 아니라 신학자와 철학자의 문헌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소크라테스, 니체, 어거스틴, 존 카푸토, 로버트 와그너, 플라톤, 뤼크 페리, 알랭 바디우, 한나 아렌트, 자크 데리다, 잔느 바티모, 레너드 스위들러, 존 록, 마틴 루터 킹, 장 보드라야르, 존 맥쿼리 등의 인물이 거론된다. 저자는 특히 한나 아렌트와 자크 데리다를 많이 인용하는데, 이미 저자에 의해 <데리다와의 데이트>라는 저서가 나온 적이 있다. (강남순 선생은 데리다를 정말 좋아한다.)
책을 읽으며 밑줄도 많이 긋고, 기억하고픈 문장도 많지만 이번에는 인용구를 적지 않겠다. 대신 예수에 대하여 관심이 있거나, 오늘날 대한민국 기독교는 어디로 가야 할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주장만큼이나 차분히,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강남순 선생의 글은 기독교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할 것이다. (비기독교인들도 읽어봤으면 좋겠다. 메시아 예수가 아니라, 철학자 예수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