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9.
“다르델로,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 (...) 이제 나한테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더 강력하고 더 의미심장해 보여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바로 당신 입으로 완벽한, 그리고 전혀 쓸모없는 공연 ...... 이유도 모른 체 까르르 웃는 아이들 ....... 아름답지 않나요,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들이마셔 봐요, 다르델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의미를 들이마셔 봐요, 그것은 지혜의 열쇠이고, 좋은 기분의 열쇠이며......” (1 51~152쪽)
1.
늙어가는 친구들의 우정과 장난을, 낡은 세대의 농담을, '농담의 황혼'을, '장난-후의 시대'를 버텨내는 가벼운 존재의 몸짓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밀란 쿤데라의 마지막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은 겨우 150쪽이 살짝 넘는다. 알랭이 앞 뒤를 장식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지만,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다. 알랭의 친구들인 칼리방, 샤를, 라몽도 주인공이라 볼 수 있고, 한 명을 더 붙여 다르델로까지 넣는다면 이 소설은 아 다섯 명의 에피소드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소극이다.
이제는 직장에서 은퇴하여 칵테일파티의 웨이터 노릇으로 소일하거나. 거리의 젊은 여인들을 관찰하며 작은 공연을 구성하거나,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못내 그리워하거나, 자신도 늙어가지만 더 늙어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를 애도하거나, 구시대의 스탈린의 농담을 둘러싼 이야기를 나누며 히히덕 대는 그저 그런 늙은 아재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늙은 아재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히 보여주는 쿤데라의 손길을 통해, 늙음도 빛난 수 있음으로, 무의미한 일상도 축제가 될 수 있음을 보게 된다. 소설을 읽으며 늙어가는 처지인 나에게 이 소설은 작은 위안이 되었다. 거대담론은 사라지고, 아재 개그는 먹히지도 않는 시대에 아재들의 우정은 사뭇 빛난다. 그렇게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만 있다면 설령 슬픔이 닥치거나 불행이 다가와도 잘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우정이야기이다.
2.
한편 이야기의 메인 선을 그리는 알랭은 갈등이 생기면 먼저 사과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과쟁이'이다. 알랭은 같은 사과쟁이과에 속하는 샤를에게 전화하여 사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잘잘못의 우열을 가리기도 전에 먼저 사과하는 습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비난 대신 사과를 선택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이렇게 평가한다.
"그런데 착각이야. 사과를 하는 건 자기 잘못이라고 밝히는 거라고. 그리고 자기 잘못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너한테 계속 욕을 퍼붓고 네가 죽을 때까지 만천하에 너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이게 바로 먼저 사과하는 것의 치명적인 결과야."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61쪽)
나는 이 문장들이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음을 고백해야겠다. 나는 여기서 처음으로 혼자, 몰래, 조용히 울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파렴치한 짓을 하고도 사과 한 마디 없는 그놈(!) 때문일 수도 있고, 갈등이 생기면 먼저 사과부터 하는 내 오래된 습관이 떠올랐을 수도 있고, 점점 늙어가며 눈물샘이 고장 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며 기분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3.
소설을 읽으며 밑줄을 치는 짓은 거의 하지 않는데, 이 소설은 세 군데에나 밑줄 쳤다. 내 눈물샘을 자극한 윗구절과 소설 마지막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처음 인용구절, 그리고 세 번째 밑줄은, 칵테일파티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라몽과 샤를의 대화 중 한 대목인데 라몽의 대사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하지만 내 눈에는 우리 장난이 힘을 잃었다는 게 보인다." (100쪽)
나는 이 대목이 밀란 쿤데라의 고백이 아닌가 싶다. 그의 첫 소설이 <농담>인데, 친구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자 던진 농담이 먹히지 않는 시대, 그래서 농담 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시대, 그럼에도 다시 농담을 시도해 보지만 이제는 그마저 힘을 잃어버린 작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무의미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늙음도 축제가 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그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