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예전에 온 세상에 밝은 덕을 밝히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다스리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집안을 공평하게 대했습니다. 자신의 집안을 공평하게 대하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몸을 잘 닦았습니다. 자신의 몸을 잘 닦으려는 사람은 먼저 마음을 바르게 했습니다.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뜻을 성실하게 했습니다. 뜻을 성실하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참된 앎에 도달하려 했습니다. 참된 앎은 만물을 잘 관찰하여 그 이치를 깨닫는 데 있습니다.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脩其身.
고지욕명명덕어천하자 선치기국. 욕치기국자 선제기가. 욕제기가자 선수기신.
欲脩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욕수기신자 선정기심. 욕정기심자 선성기의. 욕성기의자, 선치기지. 치지재격물.
5. 만물을 잘 관찰하여 그 이치를 깨달으면 참된 앎에 도달합니다. 참된 앎에 도달하면 뜻이 성실하게 됩니다, 뜻이 성실하면 마음이 바르게 됩니다. 마음이 바르면 몸이 잘 닦입니다. 몸이 잘 닦이면 집안이 공평해집니다. 집안이 공평해지면 나라가 잘 다스려집니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온 세상이 평화롭게 됩니다.
物格而后 知至. 知至而后 意誠. 意誠而后 心正. 心正而后 身脩.
물격이후 지지. 지지이후 의성. 의성이후 심정. 심정이후 신수.
身脩而后 家齊. 家齊而后 國治. 國治而后 天下平.
신수이후 가제. 가제이후 국치. 국치이후 천하평 .
6. 세상을 다스리는 지도자로부터 평범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신을 몸을 잘 닦는 일을 근본으로 삼습니다.
自天子以 至於庶人 壹是皆以脩身 爲本.
자천자이 지어서인 일시개이수신 위본.
7. 시작하는 근본이 어지러운데 끝이 다스려지는 일은 없습니다. 두텁게 할 것을 얇게 하고, 얇게 할 것을 두텁게 해서 잘된 일이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其本 亂而末治者 否矣. 其所厚者 薄而, 其所薄者 厚 未之有也.
기본 난이말치자 부의. 기소후자 박이, 기소박자 후 미지유야.
1.
삼강령(三綱領)에 이어 팔조목(八條目)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큰 배움에 도달하는 8가지 방법이 팔조목이다. 큰 순서대로 가면 세상의 평화→다스려진 나라→공평한 집안 →몸을 닦음→바른 마음→성실한 뜻→앎에 도달→만물을 관찰이고, 처음부터 역순으로는 만물을 관찰→앎에 도달→성실한 뜻→바른 마음→몸을 닦음→공평한 집안→다스려진 나라→세상의 평화로 확장된다. 점강법으로 설명하고, 다시 점층법으로 강조한다. 이 중 몸을 닦음[脩身]이 중심이고, 왼쪽 방향이 몸을 닦는 자기 수양방법이고, 오른쪽 방향이 닦인 몸으로 세상을 향하는 방법이다. 마치 몸통을 중심으로 양쪽 날개가 펼쳐지는 나비처럼, 그렇게 팔조목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2.
그렇다면 삼강령과 팔조목의 연관성은 어떤가? 가장 단순하게는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까지를 명명덕(明明德)에 해당하는 조목으로, 제가, 치국, 평천하를 신민(新民)에 해당하는 조목으로 채우면 된다. 아래 도표처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처음의 문장을 해석할 수 없게 된다. 처음 문장은 다음과 같다." 예전에 온 세상에 밝은 덕을 밝히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이 문장을 보면 명명덕은 천하로 이어진다. 나로 좁혀져 제한되지 않는다.
세상을 밝히려면 아주 밝은 빛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해가 있다. 해라면 세상에 비추지 못할 것이 없고, 따스함을 온 세상에 나눌 수 있다. 차별 없는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이 태양의 모습을 '태양의 윤리학'이라 할 수 있다. 나에게 이 해가 있을까? 곰곰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의 교가가 떠오른다. "저마다 가슴에 해를 안고, 날마다 오르는 푸른 언덕 /이 담에 우리는 햇살처럼 골고루 퍼져서 일하리라~~" 그렇구나, 유학은 하늘과 땅의 윤리를 자신의 윤리와 동화하는 방식으로 윤리학을 정초하고 있구나. 그러니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 땅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 태양이 하는 일을 나라고 못할 일은 없지.
3.
결국 유학 공부의 핵심은 그래서 수신(修身)으로 귀결된다. 나를 닦는 것이 모든 공부의 핵심처다. 나에게 모이고, 나로부터 퍼져나간다. "세상을 다스리는 지도자로부터 평범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신을 몸을 잘 닦는 일을 근본으로 삼습니다."라는 문장은 그렇게 쓰인 것이다. 공자가 남에게 보이는 공부[爲人之學]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학문[爲己之學]을 하라고 뜻이 바로 수신을 강조하는 것이다. 내가 제대로 서지 않았는데, 남을 세울 수는 없는 법. 개인주의가 아니다. 유학은 홀로 선 개인을 상정하지 않는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나다. 하지만 유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나를 녹이지 않는다. 개인이 중심이다. 유학이 현대까지 새롭게 해석되고 쓰일 근거가 된다. 수신(修身)이 근본이다.
4.
마지막 문장은 사족과 같은 문장이다. 일종의 경고다. 하지만 찬찬히 읽으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역사적 관찰이다. 그러니 두려운 마음으로 이 문장을 받아야 한다. "시작하는 근본이 어지러운데 끝이 다스려지는 일은 없습니다. 두텁게 할 것을 얇게 하고, 얇게 할 것을 두텁게 해서 잘된 일이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아성찰이 우선이다. 자신의 몸을 닦는 것이 우선이다. 마음을 돌보는 것이 우선이다. 이보다 귀한 것은 없다. 자아가 근본이고, 소중하게 대할 대상이다.
5.
무엇보다 자신을 돌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