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에서 <대학> 읽기 8 : 수신(修身)은 중용이다

by 김경윤

8. 수신(修身), 몸을 잘 닦음


“자신의 집안을 공평하게 대하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몸을 잘 닦았습니다.”라는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친하고 사랑하면 치우치게 되고, 싫어하고 미워하면 치우치게 되고, 두려워하고 공경하면 치우치게 되고, 애처롭거나 불쌍하면 치우치게 되고, 오만하고 게으르면 치우치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좋아하면서도 나쁜 점을 알고, 싫어하면서 좋은 점을 아는 사람이 드문 것입니다.


所謂 齊其家 在脩其身者. 人 之其所親愛而 辟焉, 之其所賤惡而 辟焉,

소위 제기가 재수기신자. 인 지기소친애이 벽언, 지기소천오이 벽언,

之其所畏敬而 辟焉, 之其所哀矜而 辟焉, 之其所敖惰而 辟焉.

지기소외경이 벽언, 지기소애긍이 벽언, 지기소오타이 벽언.

故 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 鮮矣.

고 호이지기악, 오이지기미자 천하 선의.


속담에 “사람들은 제 자식 못된 줄 모르고, 제 밭에 싹이 크게 자란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의 몸을 잘 닦지 않으면 집안을 공평하게 대할 수 없습니다.”라는 뜻입니다.


故 諺 有之曰 人莫知其者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 身不脩 不可以齊其家.

고 언 유지왈 인막지기자지악 막지기묘지석. 차위 신불수 불가이제기가.


1.

공자님 말씀이 담긴 경(經)에서 가장 강조했던 것이 수신(修身)이다. 그러기에 수신에 어떤 주석이 담겨있을지 매우 궁금하다. 주석을 읽으니 수신의 핵심은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치우침[辟]은 편향된 태도로 막혀 버린 상태다. 유학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친애(親愛)도, 외경(畏敬)도 애긍(哀矜)도 치우치면 막히게 된다. 아무리 좋은 것도 치우치면 자신을 닦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수신은 곧 중용(中庸)이다. 공평함[齊]이다. 사랑도 미움도 두려움도 공경도 애처로움도 불쌍히 여김도 오만함도 게으름도 적당히 해야지 한쪽으로 치우치면 막히게 된다. 막히면 사람과 사물을 그릇되게 대할 수 있다.


2.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단점이 없을 수 없으며,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장점이 없을 수 없다. 성인도 반드시 흠결이 있다. 이를 파고들면 성인조차 악마가 되고, 빨갱이가 되고, 천하의 호래자식이 되는 것이다. 예수가 그러했고, 소크라테스도, 부처도, 공자도 그러했다. 만인이 좋아하는 사람은 인류사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살면서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만큼 싫어하는 사람도 생기지 마련이다. 속상할 필요 없다. 문제는 내가 상대방에 대해 일방적 시선과 태도를 가짐으로 그를 잘못 판단하는 것이다. 이것은 속상할 일이다. 반성할 일이다. 그래서 공자는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라(반성하라)."라고 말했던 것이다.


3.

한편으로 수신을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자기 사랑' 혹은 '자기 돌봄'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주석은 달리 달려야 한다. 나는 강남순의 책 <모든 존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에서 한 구절을 따와 수신(修身)의 주석으로 삼는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타자를 사랑할 수 없다."

한나 아렌트의 말이다. 많은 철학자가 인간의 '죽음성(mortality)'을 철학적 주요 관심사로 두었지만, 아렌트는 '탄생성(natality)'을 그의 정치철학적 주제로 삼는다.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만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십시오"라는 예수 사랑의 가르침의 출발점은 '자기 사랑'이다. 그런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단순하지 않다. 자기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인 무엇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갈 때 타자에 대한 사랑이나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은 왜곡된다.

아렌트의 이 '세계에 대한사랑(amor mundi)'은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판단하고 의지를 발현시키고, 행동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이러한 과정이 부재할 때 자기 사랑, 타자 사랑, 국가 사랑, 신 사랑 또는 세계 사랑은 집착과 권력 욕망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타자만이 아니라, 자신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탄생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 -- 자기 사랑, 타자 사랑, 세계 사랑의 시작이라고 아렌트는 본다. 이 점에서 보자면 자기 돌봄, 자기 사랑은 타자 돌봄과 세계에 대한 사랑, 그리고 신 사랑과 분리할 수 없다. (184~185쪽)

- 강남순, <모든 존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행성 B,202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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