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웅진지식하우스, 2025, 특별증보판)
“아무리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악한 수단을 사용한 데 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죄를 지으면 벌을 면하지 못하는 게 삶의 이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다른 맥락에서 볼 수도 있다.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따지는 것은, 악한 수단으로 선한 목적을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당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악한 수단으로는 선한 목적을 절대 이루지 못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어떤 영역적, 논리적 추론의 산물이 아니다.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보고 체험한 끝에 얻은 경험적, 직관적인 판단이다. (30~31쪽)
1.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특별증보판)이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다. 한강 작가의 신작을 거뜬히 넘어 연속으로 슈퍼베스트셀러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나는 이 현상이 신기하다. 그가 이번에 쓴 책은 계엄과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밀의 <자유론>을 추가했을 뿐, 이전 작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작품의 재발견인가? 아닌 것 같다. 유시민의 글이 쉽고 편하지만 특별히 이 책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쩌면 시대적 상황이 이 책의 판매를 부추긴 것 같다. 마치 대선판국에 각종 후보들의 책들이 급격하게 팔렸던 것처럼.
그렇다고 유시민의 책이 태작은 아니다. 오히려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의 삶과 경험이 많이 녹아 있는, 그런 점에서 그의 주관성이 뚜렷한 책이다. 지식소매상의 역할뿐만 아니라 자아성찰의 부분도 적절하게 녹아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식인 유시민은 어떤 삶을 살았고, 지금은 어떠한 생각에 도달했는지 톺아보는 재미도 선사하다. 그런 점에서 좋은 책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많이 팔릴 책은 아니다. 시대상황에 편승한 유시민의 유명세가 책의 판매를 압도한 것이다.
2.
최근에 유시민은 책 때문이 아니라 국힘당 후보의 아내 때문에 뉴스매체에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했다. 유시민이 마치 학력차별, 성차별의 대표주자가 된 것인 양 마타도어가 판을 치고 있다. 문제가 되었던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하여 발언한 내용들이 문제가 되었다. 나도 이 유튜브를 보면서 유시민이 좀 과하다 싶은 대목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친분과 경험 때문에 생겨난 유시민의 사감이 거르지 않고 방송을 탄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유시민의 발언이 문제로 등장한 것은 기호 4번 후보가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입에 담지도 못할 성차별적 발언을 한 것이 문제 되자 물타기를 하기 위한 도구로 호명된 것이다. 전형적인 물타기이자, 오물 뒤집어씌우기 전략이다. 기울어진 언론지형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3.
말과 글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은 구설수에 오를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때로는 선택한 단어의 부적절성 때문에, 때로는 시대착오적 발언 때문에, 때로는 관점의 편향 때문에 구설수에 오른다. 유명하면 유명할수록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유시민이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이번 구설수 사태가 유시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유시민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평가할까? 유시민은 자기성찰에 능한 사람이니 지혜롭게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방 후보에 대한 '내재적 평가'를 빌미삼은 과도한 비판은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상대방이 오물을 던진다고 유시민 작가까지 오물을 던질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가 쓴 글도 '독한 방법'이 아닌 '선한 방법을 권장하고 있으니까.
라스꼴리니꼬프의 '초인론'은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체주의 체제로 현실이 되었다.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려는 신념'을 실행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폭력과 범죄를 저지를" "완전한 권리를" 행사한 전체주의 체제가 있었고, 반대편에는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동등한 인권과 참정권을 부여하고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에게 의사결정권을 제한적으로 위임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있었다. 20세기 세계사는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수없이 많은 소냐와 두냐들이 좋은 세상을 만든 것이다. 만약 도스토엡스키가 20세기를 목격했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 (34쪽)
<추신>
이번 사태에 대한 다종다양한 평가와 개입은 차지하고, 사전투표는 끝났으니, 아직까지 투표하지 않으신 분들은 6월 3일 본투표에는 꼭 참여하길 바란다. 지금 시기에 우리의 가장 강력한 의사표현이 바로 투표니까. 투표는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가장 선한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