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12.
1.
가을이 완연하다는데, 가파도 아직도 여름입니다. 터미널은 10일이 넘도록 공사 중이어서 선착장에서 더위를 견뎌가며 일하고 있어요. 이 더운 날씨에 바깥 뜨거운 햇볕 아래 일하는 분들의 기분을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터미널에서 근무하는 것은 천국(?)에서 근무하는 것이었네요. 겨울은 따뜻하게, 여름은 시원하게 일하는 것이 이리 고마운 것인지 절로 감사가 나옵니다.
2.
선착장은 배가 들고나는 곳이라 방파제에 위치하그 있어서 그날그날 날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눅눅해지는 공기에 기분마저 가라앉고, 햇빛 쨍쨍한 날에는 열기가 쏟아져 들어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요. 오후가 되면 아예 파김치처럼 축 늘어지지요. 터미널 큰 공사는 끝났지만 환기시키고 집기들 배치하고 전선 연결하고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하려면 일주일 정도는 더 걸릴 것 같은 불길함이 스멀스멀 기어 옵니다.
3.
지옥에서 보내는 한 때라 생각하고 나름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 꼴랑 독서입니다. 간혹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벗 삼아 땀 흘리며 책을 읽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 권씩 읽자 생각하고 용맹정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은유가 쓴 《해밤의 밤》을 읽고 있어요. 송악도서관에서 빌린 책입니다. 은유가 쓴 책은 매번 구입하거나 빌려서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내가 참 부족한 사람이구나'를 절감합니다. 대한민국의 남자로 태어나 나도 산전수전 다 겪었다 생각했는데, 은유의 책을 읽으면 '난 한참 멀었구나'하는 자책 겸 각성을 하게 됩니다. 여성적 시선에서 사물(사건)을 바라보는 은유의 섬세함은 내가 갖지 못한 미덕입니다.
4.
점심을 김밥으로 때우고 선착장을 둘러보며 바다를 만끽합니다. 파도가 높네요. 내일은 예비 풍랑주의보 떴는데, 배가 뜰지 걱정이지만 내일 일은 내일 겪기로 하고, 오늘 남은 근무 시간 동안 틈틈이 은유의 책을 읽으며 더위를 피해볼 심산입니다. 그래도 저녁이 되면 선선한 바람이 불 테니까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