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동료에게 말 걸기

박동수 저, (민음사, 2025)

by 김경윤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숲과 동물이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서 생각이라고, 언어라고, 예술 작품이 불리는 것은 그들에게도 이미 존재한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뿐이다. 존재양식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강한 전회가 필요하다. '그들도 우리처럼'이 아니라 '우리도 그들처럼' 행하고 있다고 거꾸로 바라보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의 인식론적 한계와 깊은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가 행하는 실천들을 다른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비판할 때 거의 반자동적으로 나오는 "그들도 우리처럼 해야 한다"라고 계몽의 문장을 멈추고, "우리도 그들처럼 하고 있다."라는 외교적 문장으로 바꿔서 다시 말해 보자. 즉 우리가 지닌 기준을 상대를 판단하기 위한 이론적 자원으로 당연시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상대가 지닌 기준을 우리를 평가하기 위한 대화의 주제로 삼아 보는 것이다.

하나의 연습으로 극우 세력 지지자에 대해 “그들도 우리처럼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하지 말고, “우리도 그들처럼 감정으로 정치를 판단하고 있다. 단지 깊은 이야기가 다를 뿐이다.”라고 말해 보자.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사람에 대해 “그들도 우리처럼 과학을 신뢰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들처럼 불안하다. 우리는 기후위기가 두렵고, 그들은 생계가 두렵다.”라고 말해 보자.

이 연습은 상대를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협상의 주체로, 적이 아니라 잠재적 동료로 보게 만든다. 이는 또한 ‘존재양식의 탐구’라는 기획을 이해하고 실행하기 위해 왜 강한 전회의 시점이 필요한지를 알려 준다. 다른 존재양식, 다른 존재론과 동등한 자리에서 만나려면 ‘우리도 그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194~5쪽)



1.

박동수 작가는 '사월의 책'의 편집자다. 한양문고에 위치한 사무실에 가보면 왼편에는 대표인 안희곤이 보이고, 오른편 모니터 뒤쪽이 박동수 작가의 자리다. 그는 언제나 말이 없다. 인사를 해도 가볍게 응대할 뿐 쉬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첫 책인 <철학책 독서 모임>을 통해 그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짐작할 뿐이다. (그의 첫 책은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나온 두 번째 책을 주문하려고 했는데, 너무 서두르는 바람이 책이 나오기 전이었다. 결국 이차저차해서 박동수 작가에게 책을 직접 선물 받았다. 그는 "사유의 동료에게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나에게 책을 주었다. (오호라, 이제 사유의 동료가 되었구나!)


2.

책 제목이 '동료에게 말 걸기'이니 그가 말하는 '동료'란 무엇일까를 찾아보았다.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진리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만 대화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세계관, 서로 다른 가치관,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다원화 시대 속에서, 기후위기 앞에서, 민주주의 위기 한가운데서 우리는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이웃들과 공존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같은 신념을 가진 동지 관계도, 진리를 전수하는 사제 관계도 아니다. 서로 다르지만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즉 동료와의 관계다.

동료는 우리에게 낯선 사람이다.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니다. 동료란 같은 직장에서 일하거나, 같은 업계에 속해 있거나, 같은 나라에 살거나, 아니면 같은 지구 위에 거주하는 사람이다. 직장 동료, 업계 동료, 동료 시민, 동료 지구인 같은 관계다." (14쪽)


박동수 작가가 나에게 동료라고 말했을 때, 나는 좀 더 친근해지는 느낌이었는데, 내가 과잉이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우리가 얼마나 오래 깊이 봤다고 쉽게 곁을 주겠는가? 박동수는 그런 작가는 아니다.^^


3.

박동수 작가는 작은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룰 줄 알뿐 아니라 섬세하며 다루면서 큰 이야기로 연결시키는 희한한 주를 가지고 있다. 책은 평민 철학자 이야기, 가족 이야기, 사랑과 돌봄 이야기.(얼마 전 박동수는 결혼했다.), 학자와 대중 이야기, 인공지능 이야기, 기후 위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주 작은 이야기로부터 아주 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버무리는 능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의 말하기와 말 걸기의 문제를 다루면서 라투르의 존재양식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동서양과 한국을 오간다. 특히 치열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진보와 보수, 학자와 대중, 근대와 전근대, 과학과 다른 영역의 대립이 과연 바람직한 근거 위에서 전개되고 있는지 문제제기한다.


4.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팍 꽂힌 말은 '그들도 우리처럼'이 아나라 '우리도 그들처럼'이라는 표현이다. 올드한 말로 역지사지(易地思之)에 해당할 터인데, 역지사지라는 말에는 '나'라는 주제/인간/중심/과학/이성/근대/도덕 등의 기준이 명확하게 세운 상태에서 상대방을 고려한다는 어감이 강해서 이 말로 치환하기는 좀 그렇다. 어쨌든 '그들도 우리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바라는 계몽적 관점으로는 대화불능이 된다. 그들은 교정, 제거, 타도되거나 수용. 허용될 뿐이다. 대신 그는 새롭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태도와 방법을 배우자고 제안한다. 적이 아니라 동료로, 서로의 영토를 확인하며 협상하는 겸손한 태도로, 복잡한 얽힘을 빠르고 신속하게 해결하려 하지 말고 천천히 느리고 끈질기게, 서로 다른 모든 양식을 겸손하게 대하자고 제안한다. 그리하여 이렇게 책을 끝낸다.


"이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자. 나의 동료, 나의 이웃, 나의 적과의 깊은 대화, 느린 대화를. 작은 규모의 협상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내가 이 책에서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은 세상의 변화가 바로 옆 사람과의 대화, 동료에게 말 걸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빠른 비판은 적을 만들지만, 느린 대화는 동료를 만든다. 당신은 어떤 세계에서 살고 싶은가?" (205~6쪽)


5.

책을 다 읽고, 박수를 쳤다. 그렇지. 그래야 박동수지! 이 책은 박동수가 박동수한 책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작은 일기